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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년 역사의 경남 도립 진주의료원이 곧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운영 주체인 경남도가 적자 재정 등을 이유로 휴업 결정을 전격적으로 발표하면서다.
병원 경영진과 의사들이 하나 둘씩 떠난 병원 건물에는 중병으로 몸을 가눌 수 없는, 돈이 없어 오갈데 없는 환자들이 내동댕이쳐진 채 울부짖고 있다.
서부경남의 의료서비스의 한 축이 무너지는 초유의 사태에 대한 분노와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CBS노컷뉴스가 진주의료원 휴업 철회운동을 앞장서 이끌고 있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유지현 위원장을 만나 사태의 전말과 해법에 대해 물었다.
유 위원장은 "느닷없는 폐업과 휴업 결정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며 "더 큰 충격은 어떠한 사전 논의도 없었다는 것이다"고 털어놨다.
그는 "진주의료원이 적자 재정을 이유로 이번에 문을 닫게 된다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전국 34곳의 지역거점 공공병원이 붕괴의 운명에 처할 것"이라며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휴업 결정을 즉시 철회하고 박근혜대통령은 ''공공의료를 강화하겠다''던 당초 대선 공약을 이행토록 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남도가 지난 3일 휴업을 발표했다
"말도 안된다. 사실 앞서 도가 폐업 결정을 발표한 것도 충격이었다. 어떤 논의 절차도 없었다. 도 의회 브리핑 룸에서 그것도 보도자료로 결정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너무 놀랐다. 휴업을 발표할 때도 그랬다. 지난 3일 오후 2시30분 발표를 하고 3시에 병원에 와서 외래보려 내원한 환자들에게 ''오늘부터 환자 못본다''며 돌려보냈다. 이건 폭거다."
-인권위원회가 최근 긴급구제 신청을 기각했다.
"애초 상황이 워낙 급박해 긴급구제와 일반 진정의 두 가지를 동시에 냈었다. 이번 인권위 답변은 ''긴급사안은 아니다''라는 해석이다. 일반 진정으로는 계속 조사키로 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현재 적절한 법적 구제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다. 참여연대, 민변 등과 공동 법률 대응팀을 꾸렸다. 법률상으론 ''환자 있으면 휴업 안된다'' 이런 명시조항이 없다. 의료법도 정말 문제더라. 의료기관 개설자가 휴업하고 싶으면 신고만 하면 된다. 국고지원이 이뤄지고 복지부가 관리·운영해온 병원이라면 문 닫을 때 적어도 복지부장관의 승인을 거치도록 해야 한다. 법률적 미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진주의료원 사태로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이대로라면 자치단체장의 일방적 결정에 따라 지역거점 공공병원 34곳이 다 문을 닫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103년 역사의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을 판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공공의료''는커녕 ''공공''이란 개념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다. 현재 경남도의 부채 규모는 1조 4000억 원에 약간 못미치는 데 비해 진주의료원에 대한 도의 연간 지원액은 12억 원선에 불과하다. 전국 지역거점 공공병원 34곳 중 경남도는 병상당 비율 등에서 최하위권이다. 병원과 병상을 늘려도 모자랄 판이다. 가거대교 등에는 거액을 쏟아부으면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달린 병원이 돈을 못번다는 이유로 문을 닫는 것은 정말 억지다."
-현재 병원에 남겨진 환자들은 어떤 이들인가.
"뇌졸중, 뇌경색 등으로 장기입원이 필요한 노인 등 43명이 남아 있다. 환자라는 게 어디 옮기라고 옮겨지고, 나가라고 나갈 수 있는거냐. 한 환자는 루게릭으로 인공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는데 몸무게가 20kg 밖에 안 나간다. 옮기다가 돌아가신다. 뇌졸중 환자의 보호자 한 분은 병원 측의 퇴원 압력에도 "병원에서 생을 마치겠다"며 버티고 있는 상태다."
-지역거점 공공병원의 어려움은 뭔가.
"재정지원이 충분치 않다. 전반적으로 적자 많은데, 지원 규모 등은 도에서 알아서 정한다. 비급여 하지 않기 때문에 민간병원보다 진료비도 싸다. 또 입지가 좋지 않고, 저소득층, 취약계층, 의료급여환자 많이 찾는다. 돈을 벌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구조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공공의료를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우수하면서도 안정적인 인력 확보 여부다. 의사들이 꺼리다 보니 병원마다 더 많은 연봉 주고 초빙해와야 한다. 공공의료병원 근무시 인센터브를 주는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왜곡돼 있는 것도 문제다. 공공의료의 비율이 기관 수 기준 6%, 병상수 기준 10%도 안된다. 대학병원 쏠림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공의료의 비율이 30%선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리병원이 많은 미국조차 30%선이다."
-질환에 따라서는 가까운 병원에서 자주 진료를 받는게 유리한데….
"의료 쏠림현상을 개선해야 한다. 현대 삼성 등 ''재벌 중심'' 문제를 말하면서 왜 의료계에서의 이런 점에 대해서는 침묵하나. 아프기만 하면 삼성, 아산 가지 않나. 재벌독과점 얘기하듯 병원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지역의료서비스를 떠맡고 있는 지방의료원의 질이 좋아지고 환자들이 찾기 편하도록 개선하는데 재정과 인력 지원을 해야 한다."
-무한정 지원은 쉽지 않다.
"나는 ''건강한 적자''를 강조한다. 과연 진주의료원이 문 닫을 만큼의 심각한 적자인지, 건강한 적자인지 따져봐야 한다. 물론 병원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라던가 재정 누수 등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 병원 운영자와 직원, 지역주민들이 잘 소통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제''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도지사가 임명한 병원장이 이사장을 겸하고 도에서 임명하는 과반수 이사가 병원을 운영한다. 노사협의회 등을 통해 "잘못된 인사다" "돈 낭비다"라고 지적하면 "강성노조다" "인사권 개입이다"라면서 물리치는 게 현실이다."
-박근혜대통령이 공공의료 강화 방침을 밝혔다.
"박근혜대통령이 후보 시절 제안한 복지·의료 공약중 꽤 괜찮은 것들이 상당히 있었다. 그런 공약을 해야 당선될 정도로 우리 국민들의 복지·의료에 대한 욕구가 높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진주의료원이 이대로 문을 닫는다면 4대중증질환 비급여, 기초노인연금에 이어 의료·복지 분야 세번째 공약 파기다. 홍준표 지사는 휴업 결정을 즉시 철회해야 한다. 홍 지사가 강성노조 탓을 하는데, 정치인들도 직접 병원을 찾아 실사를 통해 현실이 어떻고 적자의 원인이 무엇이고, 발전방안은 없는지 등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가 공공의료가 가져야 하는 역할과 책임, 그것을 지원·육성해야하는 국가적 책임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