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지는 와중에 중산층이라고 불리던 계층이 사라지는 시대. 후대 역사가들이 21세기를 평가할 때 '불평등의 시대'라고 이름 붙일지도 모를 일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좌파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책 '불평등의 대가'에서 이 시대 불평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세계 도처의 사람들은 다음 세 가지 주제에 공명하고 있었다. 첫째,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았고,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둘째, 정치 시스템은 시장 실패를 바로잡지 못했다. 셋째, 현재의 경제 시스템과 정치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공정하지 않다. (중략) 불평등은 정치 시스템 실패의 원인이자 결과다. 불평등은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을 낳고, 이 불안정은 다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악순환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여러 가지 정책들이 조화롭게 결합하여 시행될 때에만 우리는 이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27쪽)'
그렇다. 고삐 풀린 시장은 인류를 욕망의 노예로 만들었고, 그 위에 지어진 경제 시스템은 더 큰 욕망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도록 설계됐다. 이 시스템 안에서 제도권 정치는 이를 바로잡을 능력을 상실한 단계에 온 것이다. 불평등을 열쇳말로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해부한 이 책을 통해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이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사법 체계에도 악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보여 준다.
'중위 계층이 일반적인 이론들이 예측하는 것만큼 정치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까닭은 뭘까? 오늘날 미국의 시스템이 1인 1표가 아니라 1달러 1표 원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까닭은 뭘까? 이전의 장들에서 살펴본 대로, 시장은 정치에 의해서 규정된다. 경제 게임의 규칙은 정치에 의해서 결정되고, 경기장은 상위 1퍼센트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대체 왜 그럴까? 그 해답의 일부는 정치 게임의 규칙 역시 상위 1퍼센트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는 데 있다. (237쪽)'
오늘날 존재하는 불평등의 대부분은 정부 탓이 크다고 그는 지적한다. 현대 경제에서는 무엇이 공정한 경쟁인지, 무엇이 경쟁을 저해하며 불법적인 행위인지를 정부가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불평등의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의 불평등은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을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고 스티글리츠는 역설한다.
'약간의 불평등은 실제로 불가피하다. 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오랜 시간을 일한다. 제대로 돌아가는 효율적인 경제 시스템은 이런 노력을 기울인 이들에게 보상을 해주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책은 오늘날 미국의 심각한 불평등과 이런 불평등을 초래한 방식이 성장을 저해하고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불평등은 대부분 시장 왜곡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시장은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행위 대신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부를 빼앗는 행위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다. (87쪽)'
결국 오랜 기간에 걸쳐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을 희생시키면서 상위 계층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시장을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불평등의 심화는 단지 미국만이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선대인 경제연구소 소장은 "이 책의 지적과 분석이 가장 잘 들어맞는 나라는 미국 다음에 한국"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스티글리츠의 지적대로 "기회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오늘의 현실은 미래에는 불평등의 수준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불평등이 대물림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셈이다.
시장에게 도덕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 시장이 대다수 국민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꾸준히 관리돼야 하는 이유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국가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도 심하게 훼손되기 마련이다. 국민들에게 걷는 세금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가 지속성을 얻기 위해서 불평등의 해소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인 셈이다. 우리 모두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