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배우 원빈씨와 이나영씨의 열애설이 최근 핫 이슈가 됐다. 더불어 두 사람의 데이트 현장을 포착한 연예전문탐사매체 디스패치(dispatch)가 주목을 받았다.
디스패치는 그동안 10여 건에 이르는 연예계 톱스타들의 연애를 단독 보도하며 주가를 높였다. 연예계 스타들의 연애를 주로 추적해 보도하는 디스패치가 주목 받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동안 스포츠 신문이나 각종 신문의 연예면에서 쏟아내는 가십(유명인의 스캔들, 뒷이야기) 기사의 상당수가 ‘~카더라, ~아니면 말구’ 식이었다. 이에 반해 디스패치는 끈질기게 취재해 사진을 찍어 증거를 확보하고 사실 위주로 전달하는 특징을 갖는다. 파파라치는 유명인의 사진을 찍어 돈을 받고 여기저기 파는 것이고, 사진을 찍어 보도에 사용하고 본인 반박에 대응해 증거로 쓴다면 파파라치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름을 무어로 규정하든 연예인 가십을 대중들이 목말라 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돈은 몰려들고, 스포츠신문과 인터넷 신문의 연예면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드디어 연예계 연애폭로 전문매체가 생겨났다는 것을 주목할 일이다.
◇ 홀짝 홀짝 읽는 남의 뒷담화, 가십 추문이라고 부르는 스캔들, 이웃 특히 유명한 사람의 사생활에 관한 소문 ... 이런 종류의 것들을 묶어서 흔히 ‘가십’(gossip)이라고 부른다. 가십의 어원은 미국 독립전쟁 때 조지 워싱턴 장군이 이끄는 미국 측 첩자들이 적군 지역 술집에 밀파돼 적군에게 술을 홀짝 홀짝 go sip go sip 하게 만들고 부대 사정을 떠벌리게 만든 뒤 엿들은 데서 유래한다고 전해진다.
가십은 소문으로만 떠돌던 것에서 17세기 말과 18세기 초 인쇄업이 발달하며 대중문화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일반 대중이 글자를 배우고 신문을 받아보면서 가장 궁금해 한 것은 “우리보다 나은 사람들의 나쁜 행태”였다. 왕족이든 귀족이든 장군이든 우리보다 나을 것도 특별할 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려 한 것은 피압박자의 설움이나 열등감이 반영된 것일까? 또 여성의 문자해독률이 높아지면서 정치경제보다 조금은 더 아기자기한 읽을거리들이 비중을 늘려간 것도 가십기사의 발전을 거들었다.
영화배우가 가십의 대상이 된 건 1930년대 후반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되었다. 이때 영화배우 전문 가십 칼럼을 쓰는 사람들은 영화제작사로부터 봉급을 받고 썼기 때문에 부정적이거나 치명적인 건 피하고 영화 흥행에 도움 될 것들을 썼다. 1950년대 들어 가십 잡지가 등장하는데 ‘컨피덴셜’이다. 남녀 배우의 야하고 은밀한 행실을 다룬 이 잡지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여성 편력, 로버트 미첨의 대마초 흡연, 멋진 훈남 록 허드슨의 동성애(에이즈로 숨짐) 등을 특종보도했다.
원빈과 이나영 (자료사진)
영국은 저속한 것이라고 가십을 꺼리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1963년 영국에서 유명한 프러퓨모(profumo) 사건이 발생한다. 영국 보수당 출신 장관 존 프러퓨모가 매춘부와 연애를 하는데 매춘부와의 관계에 소련 간첩이 끼어들어 시골저택에서 집단으로 파티를 벌이며 변태적으로 즐겼다는 국가 보안과 관련된 섹스 스캔들이다. 이 사건으로 맥밀런 정부가 허물어졌다. 이 사건을 치르면서 영국 언론들은 가십을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앞 다투어 왕족, 귀족, 정치인 관련 가십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내셔널 인콰이어러’라는 유명한 가십전문지가 있어 가십문화를 이끌었다.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불륜, 동성애, 에이즈 감염, 변태 성향에 관한 수많은 특종들을 지금도 쏟아내고 있다. 그 비결은 가십거리와 사진을 가져 오면 듬뿍 보상하는 제도 때문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망이나 O.J 심슨 아내와 그 애인 사망 사건 등을 특종했고, 타이거 우즈 스캔들도 이 잡지 특종이다. 거의 모든 스타들이 다뤄졌고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도 이 잡지의 보도로 스캔들에 휩싸였다. (물론 오보로 판명됐다). 스티브잡스가 췌장암으로 곧 사망한다고 알린 것도 이 잡지. 결국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타임즈 같은 점잖은 신문들도 가십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상황으로 변해버렸다.
◇ 참을 수 없는 세상의 가벼움 흔히 ‘가십거리’라고 격을 낮추어 불렀지만 이제는 결코 하찮은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문화의 주요 구성 요소가 되어 버렸다. 뉴스를 온통 지배하고 언론사를 만들어내고 정권에 치명타를 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인터넷, SNS를 통해 마구 번져 가고 언제든 되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격차도 가십을 번지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배우, 가수, 재벌, 스포츠 스타가 돈을 못 버는 직업이면 가십은 번성해 나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명성과 재산을 모두 가진 사람들이 질투의 대상이 되고 가십의 대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