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9일(한국시각) 유럽 순방중 '시리아가 미국의 군사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음주에 모든 화학무기를 국제사회에 반납하면 된다"는 발언이 나왔을 때만 해도 미 행정부 관리들은 '말실수'로 폄하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0일 CNN등 미국내 주요 TV방송과 연쇄 인터뷰에서 케리 장관의 방안에 대해 '실현가능한 방안'이라고 힘을 실어주면서 그의 제안이 '말실수'가 아닌 '이너서클의 풍선 띄우기'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케리 장관의 제안이 알려진 직후만 하더라도 미 국무부는 "수사적인 표현일 뿐"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익명의 행정부 고위관리들도 '케리 장관이 말실수를 크게 했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토니 블린큰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도 "미국의 압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제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시리아에 대한 압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케리 장관에 이어 '화학무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시리아에 거듭 제안했고, 러시아의 발표 16분 뒤 실제로 시리아 정부가 '러시아의 제안을 환영한다'고 밝히면서 케리 장관의 제안은 '말실수'가 아닌 고려 가능한 해결책으로 둔갑했다.
여기에 반기문 UN사무총장도 '시리아 화학무기를 감독하고 폐기할 수 있는 감독지대를 만들자'며 제안에 동참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인터뷰는 미국 정부의 미묘한 입장변화에 쐐기를 박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와 시리아의 제안에 대해 "실제적인 것이라면 가능한 방안", "긍정적 발전", "진전을 이룰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물론 "압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거듭 밝혔지만 인터뷰의 기조는 '힘의 실제적인 사용' 보다는 '힘의 과시'로 무게를 옮겨갔다.
이에 따라 군사개입을 꺼려온 오바마 대통령이 케리 장관 등 외교안보팀 이너서클과 논의 끝에 시리아 사태를 군사개입 없이 해결하기 위해 '화학무기 자진반납'제안을 흘려 국제사회와 여론의 반응을 떠보려 했던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동안 시리아 군사개입에 대해 '제한적이고 단기적일 것'이라는 점을 누누히 강조해오는 등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껴왔다. 시리아 군사개입안을 지지하는 미국민의 비율이 50%를 밑돌고 국제사회도 구체적인 지원을 약속한 나라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냉담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무리하게 군사개입을 강행해 또다른 10년 전쟁에 빠지기 보다는 '자연스런 출구'를 모색했을 것이며, 이것이 케리 장관의 '풍선 띄우기'로 나온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화학무기 자진반납 제안에 시리아와 미국이 합의한다 하더라도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모두 반납한 것인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가 매우 까다로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화학무기를 사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가 시리아 군사개입안 카드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