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이 개성공단입주기업들에게 남북경협보험금을 반환하라고 보낸 공문
개성공단이 166일 만에 다시 문을 열었지만 업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정부가 개성공단이 문을 닫았을 때 지급했던 남북경협보험금을 한 달안에 반환하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5년 전부터 개성공단에서 의류사업을 하고 있는 A 대표.
올해 초 개성공단 폐쇄로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자, 은행에서 수십 억 원을 대출받아 직원들 월급을 줘야 했다.
이달 초 남북경협 보험금 50여억 원이 나오자 이자 부담이 큰 은행 빚부터 갚았다.
얼마 전 공단이 정상화됐다는 기쁜 소식도 잠시, 추석 직전 곧바로 날벼락같은 공문 한 장이 날아왔다.
한달 안에 이미 받은 보험금 50여억 원을 한꺼번에 다 갚으라는 것이다.
A 대표는 "기업이 돈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텐데 정부가 이 돈을 바로 내놓으려고 하는 것은 이게 과연 합리적인 것이냐"며 "개성공단 기업들을 고사시키는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 남북경협보험금은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지급하는 보험금이기 때문에, 개성공단이 정상화됐으니 보험금을 반환하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업체들, "돈 못갚을 거 알면서 갚으라니, 고사시키려는 거 아니냐"남북경협보험은 개성공단 사업이 중단됐을 때 손실 일부를 남북협력기금에서 보상하는 제도로 보험금을 받은 기업은 정부에 공단 내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정부에 넘기는 대신 정부는 이 자산을 처분할 수 있는 대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번 개성공단 사태로 59개 업체, 1천761억원을 수령해 갔다.
통일부 관계자는 "보험 원리상 보험금을 수령하면 사업권을 포기하는게 원칙이지만 정부에서는 정책적으로 사업권을 인정하면서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줬다"며 "대위권을 인정하는 이유가 이중수혜 방지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분실 보험에서 나중에 분실된 차량을 찾게될 경우, 보험금을 받던지 차량을 가져가는지 선택을 해야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최대한 유예한 것이 영업길 기준 15일로 최대 미뤄준 것이라며 더 이상 유예는 없다는 입장이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도 "제도 자체가 보험금을 지급하고나서 재가동이 됐을때 기업들이 보험금 받고 사업을 접을 것인지 반납하고 사업을 지속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며 "약정서를 체결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수출입은행에는 보험금 지급을 연기해달라는 입주기업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하지만 한 달 안에 보험금을 갚을 수 있는 업체는 거의 없다.
통일부도 현재 보험금을 반환하지 못해 폐업하게 될 업체가 있는지 파악 중이다.
또 다른 입주기업 대표 B씨도 "날벼락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어차피 금융권 등에서 차입을 해서 상환을 해야 할 거 아니냐"며 "없는 돈을 어떡하냐"며 심경을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24일 대책회의를 열고 정부에 보험금 반환 연기를 요청했다.
공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시간을 달라는 것이다.
옥성석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은 "날짜는 하루하루 닥쳐오고 있고 돈을 반환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며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조치를 기대하는 것 외에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사업권을 계속 주는 대신 보험금은 약관대로 받아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어서 입주기업들의 이중고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