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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교사 물증 없는데…자신만만 경찰 VS 신중모드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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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교사 물증 없는데…자신만만 경찰 VS 신중모드 검찰


    '수천억대 재력가 피살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김형식(44) 서울시의원을 경찰이 결정적 물증조차 찾지 못한 채 검찰로 보내면서 정황만 무성한 사건의 의문점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서울강서경찰서는 지난 3일 김 씨에 대해 살인교사 혐의만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자신만만이지만 공을 넘겨받은 검찰은 "혐의 입증이 쉽지만은 않다"면서 신중모드였다. 경찰은 김 씨가 재력가 A(67) 씨로부터 부지 용도 변경 청탁과 함께 5억여 원을 받은 뒤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살해했다고 보면서도 검토했던 뇌물수수 혐의는 적용하지 못했다.

    60대 재력가 살인교사 혐의로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3일 오후 서울 화곡동 강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닫힌 김 의원의 입…경찰은 팽 씨 입만

    경찰이 넘지 못한 가장 큰 문턱은 좀처럼 열리지 않은 김 씨의 입이었다. 애초 범행을 전면 부인하던 김 씨가 진술거부권까지 행사하자 경찰은 시작 1시간 만에 김 씨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확보한 건 A 씨가 용도 변경을 예상해 만들어둔 빌딩 증축 설계도면과 "김 씨가 용도변경을 해주기로 했다는 말을 A 씨에게서 들었다"는 건축사의 진술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씨가 살해를 지시할 만큼 A 씨로부터 어떻게 압박을 받았는지는 물음표가 달려있다. 경찰은 두 사람 사이 최근 통화기록이 사건 발생 일주일 전 정도였다는 점만 확인했을 뿐이다. 경찰은 "수시로 통화한 기록은 없는 것 같다"면서도 "두 사람의 집이 가까우니 직접 만나지 않았겠냐"고 설명하고 있다. 압박의 강도에 대한 설명은 없다. 팽 씨가 김 씨로부터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독촉을 받았다고 진술하는 정도다.


    경찰은 범행을 저지른 팽 씨의 일관된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팽 씨의 '입'에 의존하고 있다. 또, 팽 씨가 범행 당시 A 씨의 현금 뭉치를 노리지 않았다는 점과 5억여 원의 차용증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친구 김 씨의 지시 외에는 다른 범행동기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김 씨의 변호인은 "A 씨가 지난 1월 말까지 김 씨의 술값을 대납해줬고, 사건 발생 이틀 전 행사 협찬도 해줬다"면서 "두 사람은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반박했다.

    ◈ 변호인 접견권 침해냐, 증거인멸이냐

    김 씨 측은 변호인 접견권을 침해당했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나섰다. 김 씨가 구속된 뒤 접견을 요구했던 김 모 변호사가 "선임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접견 중 쫓겨났다며 강압적인 조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명백한 접견권 침해이자 직권남용"이라면서 "수사팀장으로부터 이틀 뒤 사과를 받았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 측은 앞서 김 씨와 잘 아는 또 다른 임 모 변호사가 팽 씨의 가족 부탁으로 왔다면서 팽 씨를 접견한 점을 언급하며 "김 씨 측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반박했다.

    ◈ 뒤집힌 범행동기 진실은?

    오락가락했던 경찰의 중간 수사 발표도 혐의 입증 과정의 어려움을 반증했다. 경찰은 김 씨를 구속한 이튿날인 지난 27일 브리핑을 통해 A 씨 사무실에서 발견한 김 씨 명의로 된 5억여 원 차용증을 바탕으로 '빚 독촉'이 범행동기라고 밝혔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경찰은 "돈을 못 갚았다고 출마를 못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을 바꿨다. 수긍이 어려운 범행동기라는 지적과 채무 문제에 있어 A 씨 가압류 방식을 주로 쓴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찰은 "약속시한까지 청탁을 성사시키지 못하자 6·4지방선거를 앞두고 폭로하겠다는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내놨다.

    증거물 발견 장소(사진=서울강서경찰서 제공)

     

    ◈ 대포폰과 손도끼는 어디에

    경찰은 또 김 씨의 지시로 A 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친구 팽모(44) 씨와 김 씨가 '대포폰'과 공중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은 확인했지만, 문자메시지 확보에는 실패했다. 경찰이 확보한 일부 스마트폰 메신저의 대화 내용은 혐의 입증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만 남아 있었다.

    경찰은 그러나 김 씨가 구치소에서 팽 씨에게 묵비권 행사를 요구하는 내용으로 건넨 쪽지를 확보해 스스로 범행을 인정하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씨는 구체적으로 범행을 인정하는 내용은 쪽지에 담지 않았다.

    범행 도구도 경찰은 불에 타다 만 전기충격기를 확보했을 뿐, 흉기로 쓰였다는 손도끼는 찾지 못했다.

    ◈ 경찰 "증거 넘쳐" VS 검찰 "쉽지 않아"

    경찰 관계자는 "김 씨의 자백만 빼고 살인사건에 대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면서 "범행 동기라는 게 본인의 진술이 없으면 사실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김 씨가 살인을 교사할 수밖에 없는 동기가 용도 변경 건이라는 부분을 검찰에서도 같은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겠냐"면서 "더 구체적으로 확인한다면 뇌물수수 혐의 적용을 검찰이 판단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김형식 서울시의원으로부터 사주를 받아 60대 재력가를 살해한 김 의원의 10년지기 친구인 팽모 씨가 3일 오후 서울 화곡동 강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하지만 경찰로부터 김 씨 등의 신병과 3,200여 쪽의 수사자료 등을 넘겨받은 검찰은 김 씨의 살인교사 혐의 입증이 경찰의 말처럼 녹록지는 않다는 판단이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3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살인교사 혐의 입증에 주력하겠지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살인 (혐의)는 몰라도 살인교사 혐의는…"이라고 덧붙여 혐의 입증에 여러 난관이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물증은 없고 정황만 무성한 사건을 떠안은 검찰로선 난감한 기색이 역력한 것으로, 사실상 원점부터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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