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담합의 공범인 '악의의 매수인'이라도 주식 양수 때 진술과 보증 등을 받았다면 담합에 따른 과징금을 양도인에게 손해배상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15일 현대오일뱅크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을 상대로 인천정유의 손해액 322억원을 배상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현대오일뱅크는 1999년 한화에너지, 한화에너지프라자의 주주들로부터 현재 인천정유로 상호를 바꾼 한화에너지의 주식을 양수했다.
당시 주식양수도계약에서 '일체의 행정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없다'고 피고 측은 진술과 보증을 했는데, 인천정유는 이듬해 공정위로부터 군납유류 담합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납부 명령 등을 받았다.
계약상에는 보증 위반 사항이 발견된 경우 등 발생한 손해는 500억 원이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손해를 배상하는 약정도 담겼다.
이에 대해 1심은 8억 27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2심은 반대로 한화 측에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군납유류 입찰담합에 참여한 5곳의 정유사들 가운데 현대오일뱅크도 포함된 만큼 이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악의나 과실로 하자를 알지 못한 매수인은 그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데, 담합의 공범인 현대오일뱅크가 '악의의 매수인'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계약서에는 현대오일뱅크가 진술·보증 조항의 위반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 등이 배제된다는 내용이 없고, 계약 이후 경제적 위험을 나누는데 그 목적이 있어 진술·보증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더라도 손해배상 합의는 여전히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이어 "공정위가 담합행위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것은 양수도가 이뤄진 뒤라 현대오일뱅크 측이 과징금 부과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계약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것이 공평이나 신의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본 원심 판단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