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원산지 논쟁 속 DNA 분석 결과는 '한라산'"논란보다 실리, 왕벚나무 자원화·세계화 서둘자"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는 제주의 왕벚꽃축제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제주가 세계 유일의 왕벚나무 자생지라는 사실이 일찌감치 알려지기는 했지만,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원산지 논쟁과 벚꽃축제를 둘러싼 정치외교적인 논란으로 인해 다른 지역에서는 일부가 베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최근에는 100년 넘게 이어진 벚꽃에 대한 논쟁과 논란을 뒤로하고 '제주산 왕벚꽃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자원화하자'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 왕벚나무 원산지는 '제주' "우리 땅에 있는 것(왕벚나무)을 이제야 우리 손으로 찾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루빨리 천연기념물로 보호해야 합니다."
50여년 전인 1962년 4월 제주 한라산 남쪽 해발 500∼600m 지점인 '수악교' 혼합림 속에서 자생한 왕벚나무 세 그루를 발견한 식물조사단의 단장 박만규 국립과학관장은 기쁨을 억누르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과 일본 학계의 구구한 원산지 논쟁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는 각국의 식물학자들에게 표본을 보내 왕벚나무가 한국 제주에서 자생한다는 산 증거를 보여야겠다며 함께 한 부종휴씨 등 다른 식물학자 등과 조사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한 끝에 다섯 그루의 자생 왕벚나무를 더 발견했다.
당시 문교부는 1964년 1월 31일 제주시 봉개동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일대에 있는 모두 8그루의 왕벚나무를 천연기념물 156·159호로 지정했다.
벚꽃을 둘러싼 원산지 논쟁은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벌어졌지만, 지난해 3월에는 중국까지 가세해 3국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8년 4월 선교활동을 하던 프랑스인 타케 신부에 의해 자생 왕벚나무가 제주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다. 그는 한라산 해발 600m 지점인 관음사 부근에서 왕벚꽃을 발견, 표본을 채집해 독일의 식물학자 케네 박사에게 보내 일본의 벚꽃 중 가장 유명한 품종인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와 같다는 감정을 받았다.
이어 1932년 4월 일본 교토대학의 고이즈미 박사도 한라산 남쪽 지점에서 자생한 왕벚나무를 발견하면서 사실상 제주가 왕벚꽃의 자생지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기록만 있을 뿐 자생 왕벚나무 실체가 제주에서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의 다른 식물학자들은 이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식물학자들은 왕벚나무 야생종이 일본에는 없고 유독 제주에서 발견된 기록이 나오는 점 등을 들어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제주이며, 일본으로 건너가 퍼졌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고 일본 학자들은 일본에도 왕벚나무 자생종이 있었으나 널리 재배되는 과정에서 없어진 것이라며 반박해왔다.
논란이 뜨겁게 이어지던 1962년 박만규, 부종휴 박사 등이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하면서 명실상부 제주가 왕벚나무 원산지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후 2001년 4월 산림청 임업연구원 조경진 박사팀은 DNA 분석을 통해 일본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 한라산임을 밝혀냈다.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문양(왼쪽), 일본정부를 상징하는 오동나무꽃 문양은 일본을 통일하고 임진왜란을 일으켜 대륙 진출을 도모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일본의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는 깃발과 벚꽃 상징물은 근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표적으로 근대에 창설한 일본경찰의 상징문양이 벚꽃이다.
한라산 자생 왕벚나무와 국내에 식재된 왕벚나무, 일본의 왕벚나무를 대상으로 DNA 분석을 수행한 결과 '제주의 왕벚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국내에 식재된 왕벚나무는 일본에서 다시 옮겨온 것임'을 확인했다.
2014년 11월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김승철 교수 연구팀은 국립생물자원관 등과 함께 제주도 왕벚나무의 기원을 밝혀 이를 국제 학술지인 '미국식물학회지'(American Journal of Botany)에 실었다.
연구팀은 왕벚나무가 제주도 자생 올벚나무와 벚나무, 산벚나무 복합체의 교잡으로 발생한 종이라는 사실을 DNA 분석을 통해 처음으로 밝혀냈다.
◇ "벚꽃, 정치적 논란 접고 이젠 즐기자" 벚꽃을 둘러싼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본 식민지배를 경험한 우리나라 국민정서와 계속된 일본의 역사 왜곡 때문에 불거진 외교적 마찰이 복합적으로 얽힌 벚꽃축제 논란이 두 번째다.
일본의 나라꽃인 것처럼 여겨지는 벚꽃을 주제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지역축제를 벌이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과 대표적 봄꽃인 벚꽃을 정치·외교적 해석 없이 있는 그대로 즐기자는 의견이 충돌하면서 빚어졌다.
전자(前者)는 벚꽃이 태평양전쟁 때 폭탄을 실은 전투기를 몰고 연합군 함대에 몸을 내던진 '가미카제(神風)' 대원의 가슴에 꽂힐 정도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성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벚꽃이 일왕 친정 형태의 통일국가가 형성된 근대 메이지유신 이후 '순간적으로 지는 아름다움으로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무라이의 정신, 산화(散華), 할복 등의 의미로 상징조작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10년 전 이 같은 주장으로 인해 국회에서도 벚꽃축제 재검토 주장이 제기되는가 하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여론조사가 실시되고 뜨거운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사진=박종민 기자)
그러나 이렇다 할 결론 없이 논란은 수그러들었고 서울 여의도와 경남 진해, 부산 낙동강변, 강릉 경포대, 제주에서의 벚꽃축제는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제주에서는 제주산 왕벚꽃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자원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강모(38·여)씨는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인 만큼 제주에서 벚꽃축제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또 제주의 왕벚나무가 돌고 돌아 우리나라 전역에까지 퍼진 것인데 다른 지역에서의 벚꽃축제도 별문제가 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정치·외교적 문제가 있다고 해서 벚꽃축제를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 김찬수 박사는 "왕벚꽃 기원을 둘러싼 논쟁과 정치적 논란은 실익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 입장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는 피곤한 문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왕벚나무 자생지가 제주에 있고 매우 아름다운 자원이라는 점"이라며 제주산 왕벚나무를 최대한 널리 보급하는 등 자원화하고 세계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제주도, 국립산림과학원, 한국식물분류학회는 지난해 공동으로 왕벚나무 자생지인 한라산 관음사(제주도 향토유산 제3호)에서 '왕벚나무 기준 어미나무 명명식'을 열고 왕벚나무 자원화 사업에 시동을 걸어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