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이승현이 29일 KCC와 챔피언결정전에서 정상을 차지한 뒤 기념으로 그물을 잘라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고양=박종민 기자)
오리온이 14년 만에 프로농구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2명의 승현'이 영광의 순간을 이끌었다.
2001-2002시즌 김승현(38 · 178cm)에 이어 올 시즌 이승현(24 · 197cm)이 오리온의 정상 등극을 견인했다. 그야말로 '승현 평행이론'이다.
이승현은 29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KCC 프로농구' KCC와 챔피언결정 6차전에서 120-86 승리에 힘을 보탰다. 37분 가까이 뛰면서 14점 6리바운드 1도움 1가로채기를 올리며 시리즈 전적 4승2패, 오리온 정상 등극의 중심에 섰다.
오리온으로서는 14년 만의 우승이다. 당시 오리온은 김승현이라는 걸출한 신인의 가세로 단숨에 통합 우승을 거뒀다. 김승현은 당시 정규리그 전 경기를 뛰며 평균 12.2점 8도움 4리바운드 3.2가로채기를 올리며 최초로 신인왕과 MVP를 휩쓸었다.
SK와 챔프전에서도 김승현은 12.3점 6.1도움 4.9도움 1.9가로채기의 맹활약으로 우승에 앞장섰다. 김병철 현 오리온, 전희철 현 SK 코치와 함께 이뤄낸 정상이었다.
이후 오리온은 김승현을 앞세워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듬 시즌 거침없이 정규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비록 TG(현 동부)와 챔프전에서 이른바 '사라진 15초 오심'으로 눈물을 흘렸지만 당시 오리온은 리그 최강이었다.
하지만 이후 오리온은 챔프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김승현이 6시즌 연속 플레이오프(PO) 진출을 이끌었지만 정상까지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김승현은 부상과 이중계약 파문으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오리온은 3번이나 최하위에 머무는 등 암흑기를 맞았다.
'14년 전 김승현' 오리온스 김승현(가운데)이 2001-2002시즌 SK와 챔프전에서 우승을 거둔 뒤 김병철, 라이언 페리맨, 전희철, 마르커스 힉스(왼쪽부터) 등 동료들과 함께 한 모습.(자료사진=KBL)
이후 오리온의 르네상스를 이끈 선수가 공교롭게도 김승현과 이름이 같은 이승현이다. 이승현은 지난 시즌 당당히 신인왕에 오르며 '승현'의 계보를 이었다. 역시 전 경기를 뛰며 평균 10.9점 5.1리바운드 2도움 1가로채기의 준수한 성적을 냈다. 다만 PO까지는 올랐지만 챔프전에는 조금 모자랐다.
이를 간 이승현은 올 시즌 기어이 팀을 챔프전까지 올렸고, 우승까지 이끌었다. 5차전까지 이승현은 평균 14.2점 5.2리바운드 2.4도움 1.4가로채기를 기록했다. 리그 최장신(221cm)이자 최중량(150kg) 하승진을 막으면서도 올린 수치다. 추일승 오리온 감독이 "챔프전 MVP는 당연히 이승현"이라고 강조한 이유다.
결국 이승현은 김승현처럼 데뷔 첫 시즌 우승은 아쉽게 무산됐지만 이듬 시즌 오리온의 정상 등극을 이끌었다. 김승현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상대 외국인 선수를 도맡은 헌신과 알토란 같은 외곽슛과 소금같은 리바운드로 팀을 든든하게 지켰다.
특히 선배처럼 정규리그 MVP는 이루지 못했지만 챔프전 MVP를 거머쥐었다. 이날 농구 기자단 투표에서 이승현은 총 87표 중 51표로 MVP의 영예를 안았다. 이는 김승현도 받지 못한 것. 이 정도면 14년 전 김승현의 재림이라고 할 만하다.
챔프전 기간 이승현은 14년 전 선배 김승현과 비교에 대해 "선배와 같이 이름이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일 따름"이라며 황송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두 승현이 오리온의 우승을 이끌었다는 말은 기분이 좋다"고 덧붙였다.
14년 전 김승현과 올 시즌 이승현. 신장과 포지션, 겉모습까지 다르지만 오리온의 우승을 가져온 행운의 이름은 같다. 오리온과 승현은 운명적으로 '찰떡 궁합'이라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