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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20일 밤 9시21분쯤 모 지방청 112종합상황실로 "남편이 술에 취해 가족들을 죽인다고 위협하고 있는데 집 안에 큰딸이 있고 문을 안 열어준다"는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은 긴급 신고(코드1)로 접수한 뒤 1분 만인 9시22분쯤 사건을 지구대에 하달했다. 하지만 관할 지구대 소속 순찰차는 주차 상담 등 비긴급 신고(코드2)를 처리하고 있었다. 같은 지구대 소속 다른 순찰차 역시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상태였다. 결국 인근 지구대 소속 순찰차가 출동에 나섰지만 신고 접수 9분이 지난 뒤에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 가해자는 부엌칼로 큰딸을 위협하는 급박한 상황으로 경찰특공대까지 추가로 출동했다. 다행히 가해자가 스스로 집 밖으로 나와 붙잡히면서 아찔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지난해 5월14일 0시56분쯤 또다른 지방청 112종합상황실로 "시청 부근에서 모르는 남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의 신고전화가 접수됐다. 경찰은 긴급 신고(코드1)로 접수했지만 관할 순찰차는 먼저 접수된 단란주점 내 음주 소란 신고(코드2)를 처리하고 있어 성추행 현장에는 9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가해자는 이미 도주한 상태였고 성추행 피해를 입은 여성은 길거리에서 장시간 불안에 떨며 경찰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이 긴급하지 않은 112신고 처리로 정작 긴급한 신고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비긴급 신고는 긴급 신고 처리 후 출동하도록 출동 체계를 개선한다.
경찰청은 112신고 대응 단계를 기존 코드1(긴급)·코드2(비긴급)·코드3(비출동) 등 '3단계'에서 코드0~4까지 '5단계'로 세분화하고 긴급신고는 최단 시간 내 출동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3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112신고 접수 건수는 1910만4883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순찰차가 출동했지만 긴급하지 않은 신고(코드2) 건수는 856만8946건(44.9%)이었고, 아예 출동할 필요가 없는 상담.민원성 비출동 신고(코드3) 건수는 838만5709건(43.9%)건이나 됐다.
전체 112신고 건수의 11.3%만 긴급한 출동이 요구되는 사건이었다.
결국 경찰력과 장비가 한정된 상황에서 긴급하지 않은 신고로 인해 정작 절박한 위험에 처한 국민이 제때에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지적이 일자 경찰은 112신고 출동체계를 개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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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우선 코드1 중 여자가 비명을 지른 후 전화가 끊어지거나 남자가 여자를 강제로 차에 태워간 상황 등 신고자와 통화 도중에 출동 지시가 필요한 사건(선지령 필요건)은 코드0으로 구분해 지방청 112종합상황실에서 대응하기로 했다.
코드1은 '모르는 사람이 현관문을 열려고 한다', '주차된 차량의 문을 열어보고 다닌다'는 신고처럼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이 임박하거나 진행 중 혹은 직후인 경우 또는 현행범인 경우다.
경찰은 출동이 필요하지만 긴급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코드2·3에 대해서는 시간적 여유를 두고 출동할 방침이다.
생명·신체에 잠재적인 위험이 있거나 범죄예방 등을 위해 현장조치가 필요한 사건(코드2)은 긴급 신고 처리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출동한다. '집에 와보니 도둑이 든 것 같다', '영업이 끝났는데 손님이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와 같은 신고는 코드2로 분류된다.
또한 '언제인지 모르지만 금반지가 없어졌다'와 같이 즉시성이 떨어지는 신고는 코드3으로 분류, 신고자와 약속을 정한 후 당일 근무시간 내 출동하도록 했다.
코드4는 긴급성이 없는 민원·상담 신고로 원칙적으로 출동하지 않고 타기관에 인계할 방침이다.
경찰은 112신고가 비긴급 출동 신고로 분류되면 접수요원이 비긴급 신고임을 고지한 후 알림 문자를 발송해 불편을 최소화할 예정이다.
다만 비긴급 상황이 긴급 상황으로 발전하는 경우 신고자가 112로 신고하면 즉시 경찰이 출동한다.
경찰 관계자는 "112신고가 비긴급 신고로 분류돼 경찰 출동이 다소 지연되더라도 이는 긴급 신고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임을 양해해주시길 바란다"며 "비긴급 신고에 대한 출동 부담이 덜어지는 만큼 긴급신고 현장대응 골든타임 사수를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