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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만져주면…" 성희롱 '고객' 오늘도 모십니다

인권/복지

    "한번 만져주면…" 성희롱 '고객' 오늘도 모십니다

    • 2016-04-06 06:00

    [노동의 그늘 속 가사도우미 ③]

    '新 하녀'. 소변이 급해도 일이 끝날 때까지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 꽝꽝 언 밥을 먹고, 비싼 목걸이가 없어졌다며 의심을 받기 일쑤다. 다른 가정의 가사 노동을 대신 해주는 가사도우미들은,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 속에 일하면서도 '근로'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CBS는 63년째 법 앞에 실종된 가사도우미의 실태를 짚어보고 이들이 노동자로 바로 서기 위한 대안을 살펴본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사모님이 만족할 때까지" 21세기 新하녀 일기
    ② 방배동 가사도우미는 왜 '법' 앞에 유령이 됐나
    ③ "한번 만져주면..." 성희롱 '고객' 오늘도 모십니다
    ④ "고용주가, 아줌마 아닌 가정관리사로 불러준다면"
    ⑤ 가사도우미도 新하녀도 아닌, 노동자로 서는 길


    가사도우미 자료사진 (사진=전국가정관리사협회 제공)

     

    전직 가사도우미 김모(47·여)씨는 6년 전 '고객님의 남편'으로부터 '몹쓸짓'을 당했다.

    서울 염창동의 한 아파트에서 가사서비스를 하던 중 부엌으로 불쑥 들어온 '남편분'이 자신의 성기를 만져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돈도 주고 남은 근무 시간도 한 걸로 쳐 주겠다"는 남성의 말에 놀란 김씨는 작업복을 입은 채 집을 뛰쳐나왔다.

    '고객의 남편'이 이후로도 계속 만남을 요구해 견디다 못한 김씨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교사이던 해당 고객이 "우리 남편이 성희롱했다는 증거가 있냐"며 거세게 항의하고 나선 것.

    '다른 집 일도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김씨는 결국 고소를 포기했지만,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4개월 뒤 가사도우미 일을 아예 그만뒀다.

    ◇ "고객님 남편이 속옷만 입은 채…속으로 참아야"

    김씨 경우처럼 폭언, 성희롱을 당하거나 도둑으로 몰리는 등 인권침해에 시달리는 가사도우미들은 상당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가사도우미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과도하게 감시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가사도우미는 58명으로 28.2%로 조사됐다.

    부당한 의심을 받았던 사람은 11.7%, 성적 불쾌감을 경험했던 경우도 12명으로 5.8%를 기록했다.

    성폭력이나 유사 경험이 있다는 응답을 한 가사도우미도 4명으로 나타났다.

    전직 가사도우미 김모(56)씨는 "일을 가면 가끔 고객님 남편분이 속옷만 입고 있는 경우가 있다"며 "굉장히 민망하고 기분이 나쁘지만 속으로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6년째 가사도우미를 하고 있는 김모(61)씨도 "남자 고객의 집을 청소한 적 있는데 어떤 여자랑 잤다는 이야기를 농담식으로 했다"며 "잠자리를 품평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불편하고 민망했다"고 털어놓았다.

    ◇ "물건 없어졌다며 주머니 뒤지기도…도둑 누명에 일하기 두려워"

    집안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일하는 특성상 가사도우미들은 물건이 없어지만 가장 먼저 의심을 받곤 한다.

    가사도우미 강모(46·여)씨는 2년 동안 일하던 집에서 도둑으로 몰린 경험 이후 사람이 없는 빈집을 청소할 때마다 두려움이 앞선다.

    강씨는 "주인집 할머니가 90만원짜리 홍삼이 없어졌다고 저를 의심했는데 말할 수 없이 억울하고 겁이 나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며 "뭔가 없어지면 또 도둑으로 몰릴까 두렵다"고 말했다.

    또다른 가사도우미 박모(61)씨도 "물건이 없어졌다는 오해를 받을 때 가장 서럽다"며 "주머니를 조사해보겠다며 몸을 더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벽 6시에 자고 있는데 전화해 비싼 시계가 없어졌다며 사람을 깨워놓고는 물건을 찾은 이후엔 찾았다고 말도 안 해줬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일부 가사도우미 파견업체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가사도우미들에게 큰 가방은 가져가지 말라고 사전 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 전문가들 "가사도우미의 노동이 담장 밖으로 나와야"

    전문가들은 '사적 영역'에서 이뤄지는 가사도우미들의 노동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률사무소 새날의 정명아 노무사는 "가정 내에서 일하기 때문에 가사도우미들은 모욕과 폭행 등의 범죄에 고립될 가능성이 더 높다"며 "이들의 근로가 담장 밖으로 나와 '노동'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오은진 센터장도 "사적인 공간에서 일하는 공간의 취약성과 불분명한 계약관계가 가사도우미들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센터장은 "가사도우미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그들의 일터는 사적 영역에 불과하다"며 "이들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기 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가사도우미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가사도우미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내용의 법적 권고안을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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