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비밀번호 흔적 지워놓고 경찰에 수사의뢰?경찰은 오히려 내부 공모자 수사로 혼선
채용관리과 도어락. (사진=조기선 기자)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7급 공무원 시험성적과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송모(26)씨의 숨은 조력자는 다름아닌 인사혁신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무실 비밀번호가 벽면에 고스란히 적혀 있던 데다 경찰에 수사의뢰할 때 이 부분을 고의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공무원 시험 응시생 송씨는 훔친 공무원 출입증 3개를 가지고 건물 1층 보안검색대와 상층 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스피드게이트를 별다른 제지 없이 통과했다.
송씨는 2월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국가중요시설 '가'급(최상급)으로 분류되는 정부서울청사를 5차례에 걸쳐 제집 드나들듯 휘저었다.
하지만 공무원시험 성적을 관리하는 인사혁신처 채용관리과 사무실 출입문만 규정대로 잠겨 있었어도 시험성적 조작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송씨는 "채용관리과 사무실 옆에 붙어 있는 비밀번호를 보고 잠긴 문을 열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일부 부처는 새벽 무렵 청소나 요쿠르트 등 배달 등을 위해 사무실 시건장치 부근에 비밀번호를 적어놓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송씨도 다른 사무실 출입문 옆에 적혀있는 비밀번호를 보고 개방을 시도했고 실제로 문을 열리자, 인사혁신처 채용관리과 비번도 눌러 문을 연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내부 공모자 여부를 수사하던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송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청사 청소 용역 직원들을 조사했다.
해당 직원들은 "실제로 사무실 문 옆에 비밀번호가 씌어져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국가정보원이 정부부처 정보보안 지침을 만들어 공무원 컴퓨터는 ▲부팅 단계 시모스(CMOS) 암호 ▲윈도 운영체계 암호 ▲화면보호기 암호를 모두 설정해야 한다고 규정했지만 정작 인사혁신처의 안일한 사무실 관리가 허술한 보안 상태를 여실히 드러낸 것.
특히 마지막 침입 엿새가 지난 1일 경찰에 비공개 수사의뢰한 인사혁신처는 비밀번호가 문 옆에 적혀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감췄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수사의뢰를 하기 전에 비밀번호를 전부 지운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혁신처는 경찰에 폐쇄회로(CC)TV 화면을 넘기기 전 내부 공모자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해당 화면을 돌려봤는데, 송씨가 벽에 씌어져 있는 비밀번호로 문을 여는 것을 확인하자 책임을 피하기 위해 비밀번호 흔적을 지운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인사혁신처가 수사를 의뢰할 때 비밀번호가 벽에 씌어져 있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며 "현지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비밀번호 존재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특히 인사혁신처는 경찰에 비공개 수사의뢰를 한 뒤에도 송씨의 영장신청 단계를 외부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또다른 논란도 일 것으로 보인다.
결국 7급 공무원시험 성적 시스템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보안사고까지 낸 인사혁신처는 사후 경찰 수사단계에서도 혼선을 초래하고 사고수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