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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조선인의 욕망, 신문 하단광고에서 읽다

    신간 '모던 씨크 명랑'

     

    '모던 시크 명랑'은 신문광고에 담긴 근대 조선인의 삶과 사회상을 흥미롭게 짚어낸 책이다. 1920년부터 1940년까지 20여 년간 발행된 신문 6천여 부의 광고면들을 뒤졌다. 190여 점의 중요 광고 원본 이미지를 수록하고 해설했다.

    1920~1930년대는 일제강점기의 암울과 서양 문명의 경이가 공존한 시대였다. 그 시절의 신문광고에는 상품과 소비의 역사뿐 아니라, 삶을 송두리째 바꾼 현대 문물의 거대한 물결 앞에서 놀라고 흥분하고 가슴 설렜던 한 시대의 디테일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축음기, 화학조미료, 자동차, 샴푸, 성병약에서부터 콘돔, 향수, 누드 사진집 등 이 책에 수록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수백 가지 당대 상품의 광고 원본이미지들 속에는 빛바랜 지면 속에 숨어 있던 우리 삶의 민낯이 드러나 있다.

    광고는 대부분 신문 지면의 하반신에 해당하는 아래쪽에 실린다. 근대 한국의 사회상에 대해 기사를 써왔던 저자 김명환은 상반신의 점잔 빼는 기사면들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은 삶의 진짜 풍경을 하반신 광고에서 찾아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신문이나 사람이나 하반신이 좀더 솔직한 것 같다"고 웃음 섞인 소회를 밝혔다.

    이 책은 의식주에서 성생활까지, 오늘 우리가 누리는 현대적 생활양식들이 첫 걸음을 내딛을 때의 세상 풍경을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막연한 예상을 깨뜨리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껌은 흔히 6·25 때 미군에 의해 한국 땅에 처음 전해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1925년 3월부터 몇 달간 반복된 ‘리글리 췌잉껌’ 광고를 찾아내 껌의 전래 역사를 제대로 알려준다. 샴푸로 머리 감는 시대도 1960년대 후반쯤부터 시작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이 책은 1934년 6월부터 신문에 실리기 시작한 일본제 ‘화왕 샴푸’ 광고를 우리 앞에 제시한다. 미키 마우스 캐릭터가 1935년 2월 기침약 광고에서부터 이 땅의 광고에 이미 사용되었다는 사실, CM송의 효시로는 지금까지 1959년의 진로소주 CM송이 꼽혀왔지만 훨씬 이전인 1930년 8월 ‘거북선표 고무신’을 광고하는 ‘거북선가’라는 광고 노래가 신문에 실려 있다는 사실, 초기의 콘돔은 피임기구가 아니라 성병 감염을 막는 방독 기구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현대의 양념인 줄 알았던 토마토케첩이 이미 80여 년 전 경성의 상점가에서 판매됐고, 화학조미료는 1930년대에 처음 등장할 때부터 오늘날과 똑같이 ‘요리 못하는 하수’들도 슬쩍 치면 꿀맛 되는 신의 한 수로 광고됐음도 흥미롭다.

    1920~30년대는 ‘활동사진에 가슴팩이만 내여 노아도 잘리는’ 시대였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에서 수입한 나체 사진집, 섹스 이론서 등 성인용 서적과 성병약, 성기능장애 치료제 광고가 신문에 자주 등장했다. 갓 쓴 선비들이 여전히 거리에 가득했던 시대였지만, 놀랍게도 과감하고 노골적인 광고문이 통용되고 있었다. 은밀한 당대인들의 사생활은 밤문화와 성생활 관련 광고에서 가장 흥미롭게 드러난다. “튼튼하고 육감적”이라며 뻔질나게 게재된 콘돔 광고, “꽃 같은 미인이 아주 빨가버슨 대 진품”이라고 허풍을 떤 여자 나체 사진집 광고들(그러나 이러한 광고에 혹해 우편판매로 상품을 구매하면 장정들이 벌거벗고 땀 흘리며 일하는 사진들이 날아와 구매자를 망연자실하게 하는 일이 빈번했다 하니 당대부터 통신판매 사기가 횡행했던 셈이다), “성교는 인생의 기초… 인생 최대 쾌락이로다”라고 낯 붉어질 만한 표현도 서슴지 않은 성 이론서적들 광고들과 성병약 광고들도 있었다.

    또 “모던하고 씨크한 웨트레쓰”들의 ‘첨단적 사비쓰’를 노골적으로 강조하며 웨이트레스 30명의 단체사진까지 넣은 경성의 유흥주점 광고, 도망간 기생을 찾는 수배광고들은 화류계의 단면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갓 쓴 노인들이 거리에 가득하던 시대의 이면들이다.

    본문 광고 설명 중에서

    도주한 기생을 수배한 신문 1면 광고. 이 광고문에는 기생의 나이와 키, 심지어 위쪽 앞니에 금니를 했다는 것까지 상세하게 적었다. 1920년대 신문광고를 통해 현상수배된 기생들이 고통을 견디다못해 뛰쳐나간 가련한 이들인지, 빌린 돈을 떼먹은 이들인지 알 길은 없다. 유흥업의 쇠락 속에 고단했던 화류계 인생의 한 단면을 느끼게 할 뿐이다.

    어울리지 않는 일을 표현할 때 ‘갓 쓰고 양복 입는다’고 하는데, 1934년 신문광고에는 진짜로 갓 쓰고 양복 코트 입은 사람이 등장했다. ‘조선용으로 특별히 제작했다’는 오버코트 광고이다. 그림 속 아저씨는 코트를 입었지만 갓 쓰고 장죽까지 들었으며 코트 안에는 한복 바지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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