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전북 전주시청은 저상버스 승강장 공사를 위해 벌목해야 하는 은행나무에게 현수막으로 된 편지를 보냈다. (사진=임상훈기자)
사람에게 편지를 받는다면 나무의 기분은 어떨까요?
그것이 벌목 그러니까 이별에 관한 내용, 나무 입장에서는 죽음에 대한 편지라면 말입니다.
전북 전주시 팔달로 전주객사 맞은 편 시내버스 승강장에 서 있는 은행나무는 최근 아주 이례적인 편지를 받았습니다.
작은 현수막으로 된 편지는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휴식이 되어 준 나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제는 사람들의 또 다른 편의를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할 때라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편지를 보낸 이는 전주시청에 근무하는 이내운 씨입니다. 개발과 벌목에 더 관심이 많을 법한 토목직 공무원인 이 씨가 이런 편지를 보낸 것 또한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 승강장은 장애인 이용객이 많습니다. 하지만 휠체어용 비가림막이 없고 저상버스도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주시는 교통약자를 위해 저상버스 승강장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로수 간격이 너무 좁아서 최소 설치공간 7m를 확보하려면 한 그루는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나무가 편지를 받게 된 사연입니다.
이 씨는 이식도 생각해 봤지만 밑동 지름이 50cm가량 되는 큰 나무라 이식을 해도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전주시의 조례도 이런 경우에는 이식보다는 벌목을 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전주 사람들은 팔달로 은행나무들에 대한 추억들이 있잖아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에도 이 나무가 여기에 있었어요."
37살 전주 토박이인 이 씨는 이 나무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좋지 않아 환경단체를 찾아 고민을 나눴고 그렇게 찾은 답이 나무에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이 씨는 "나무가 준 고마움 때문에 편지를 쓰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편지를 보며 나무와의 이별을 알고 마음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전주시는 이곳을 비롯해 14개 승강장을 저상버스 용으로 개선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하자면 전동성당과 전북예술회관 승강장의 나무도 베어야 합니다. 하지만 설치가 힘들고 승강장 미관이 나빠지더라도 나무와의 이별은 최소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두 그루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면했습니다.
30년 이상 시민의 그늘막이 되고 매연을 막아주며 자리를 지킨 은행나무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전주시는 곧 벌목 계획을 세우고 이번 주 안에 나무를 벨 예정입니다.
나무는 편지를 마주보지 않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무가 사람들에게 보내는 이별 편지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편지는 "여러분 고맙고 미안해요. 그동안 그늘과 쉴 공간을 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할 것 같아요."라고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없이 많은 가로수 중 하나, 셀 수없이 벌목되는 나무 중 한그루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은 사람들의 편지가 마지막 순간에 선 나무에게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