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6일 열린 언론사 보도·편집국장 오찬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45개 중앙언론사 보도·편집국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하면서 4·13총선 참패 이후 첫 소통 행보에 나섰다.
하지만 선거 패배 책임에 대한 인정은 없었다. 또 역사교과서 국정화 옹호나 노동개혁 필요성 강조 등 '국정기조 고수'를 재확인하면서 소통보다는 일방통행을 거듭했다는 비판을 샀다.
박 대통령은 행사 모두발언에서 "오늘 이 자리가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소통하는 그런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각계각층과 협력과 그리고 소통을 잘 이뤄나갈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도 했다.
국장단과의 질의응답에서도 ‘3당 대표 회동’을 약속하고 '국회와의 협력' 의지를 밝히기는 했다. 그러나 국장단과의 대화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박 대통령의 소통 의지가 의문시된다.
박 대통령은 총선 민심을 식물국회에 대한 심판으로 인식했고, 민심을 반영하겠다면서도 인적 쇄신은 거부했으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한일 위안부 협상을 옹호하면서 노동개혁 등 국정기조는 고수했다.
박 대통령은 총선에 대해 "국회가 양당체제로 돼 있는데 되는 것도 없고 식물국회 그런 식으로 쭉 가다보니까 국민들 입장에서 변화와 개혁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며 "양당체제에서 3당체제를 민의가 만들어 준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같은 날 여당 '당선자 워크숍'에서조차 박 대통령 책임론이 분출했는데도, 박 대통령의 상황 판단은 전혀 달랐던 셈이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이러니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소리가 나온다"고 혀를 찼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중심제라고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거나 "대통령이 돼도 한번 해보려는 것을 이렇게 못할 수가 있느냐, 임기를 마치면 엄청난 한이 남을 것같다"는 말도 했다.
"'한번 해봐라. 그리고 책임져봐라' 이렇게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야당이 정책을 번번이 가로막았다는 하소연이다.
대통령 뜻대로 국가가 운영된다면 군주정과 다를 게 없다는 점에서, 야당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박 대통령의 이 말은 우리 헌법이 채택한 공화제 정치를 부정하는 것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작 박 대통령은 야당 대표시절 강경 장외투쟁 등으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사립학교법 개정 등 각종 정책을 좌절시킨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정부 인적쇄신에 대해서도 "지금 그렇게 할 여유가 없다"면서 반대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경제난과 북한도발 위협 등으로 상황이 급박하기 때문에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서 내각을 바꾼다'는 것은 생각하기가 어렵다"는 말은 정치권 안팎의 쇄신요구를 단지 '국면전환용 이벤트'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정기조 고수 의지는 또다시 확인됐다. 박 대통령은 "파견법이야말로 일석사조쯤 될 것이다. 통과되면 9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며 노동개혁 관련법 처리의 필요성을 또 강조했다. 야당은 파견법이 노동유연성을 대폭 강화시키는 친재벌 입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옹호했다. 박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올바른 통일이 돼야지, 지금과 같은 교과서로 배우면 정통성이 오히려 북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을 위한 북한에 의한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며 현행교과서가 적화통일을 조장한다는 논리를 동원했다.
한일 위안부 협상과 관련해서는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하고 연계가 되어 있느니 어쩌니 하는데, 이건 정말 합의에서 언급도 전혀 안된 문제다. 그런 것을 갖고 선동을 하면 안된다"면서 비판 여론을 일축했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야권은 신랄한 비판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은 "불통의 리더십을 고수하겠다는 대통령의 고집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논평했다. "다른 야당도 총선 민심은 일방적 국정기조를 바꾸라는 것"(국민의당), "가장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 사람은 대통령 자신"(정의당)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