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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꿈을 심어주겠습니다"…비틀즈 전시관 내년 개관



공연/전시

    "비틀즈의 꿈을 심어주겠습니다"…비틀즈 전시관 내년 개관

    경기도 장흥에 건립, 아틀리에 입주작가들과 협업

    아트덤보 유 츠웨이 대표가 4월 한국을 방문해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임한길 제공)

     

    전설의 락 그룹 비틀즈 붐이 다시 일고 있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비틀즈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올해 2월 말부터 시작되었다. 올해 5월에는 비틀즈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2013년 영국에서 제작된 뮤지컬 '렛 잇 비'의 오리지널 공연팀이 한국을 찾는다.

    비틀즈 붐 속에서 비틀즈를 주제로 한 상설전시관이 한국에 들어선다. <비틀즈 투마로우="" 아트="" 스페이스="">라는 이름의 상설전시관이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일대에 세워진다. 늦어도 내년 8월에는 개관될 예정이다.

    이 사업을 총괄 진행하고 있는 (주)티비티컴퍼니의 조순옥 대표는 "먼저 이곳에 한국작가 20여명이 상주하게 되는 '아트 비 아틀리에'가 올해 4월말까지 우선 입주하고, 내년 상반기에 <비틀즈 투마로우="" 아트스페이스="">가 완공되면 본격적인 전시관 준비를 거쳐 늦어도 내년 8월에는 전시관 개관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상설전시관은 홍콩의 아트덤보(대표 유 츠웨이)와 이 회사의 한국 내 협력사인 (주)티비티컴퍼니, 그리고 상설전시관의 건설과 투자를 담당한 해피하우스(대표 안영삼)의 삼자간 계약이 체결됨으로써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아트덤보와 티비티컴퍼니는 예술가 입주공간과 전시관의 상승 효과가 발휘될 수 있도록 '아트 비 아틀리에'의 대표작가인 조각가 김택기씨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들은 비틀즈 상설전시관 건설 초기부터 전시공간 구성, 작품제작에 이르기 까지 전 과정을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

    <비틀즈 투마로우="" 프로젝트="">는 2011년부터 비틀즈 탄생 50주년을 겨냥하여 사진전시회 및 재창조된 콘텐츠로 베이징, 상해, 대만 등에서 전시를 가져왔다. 2012년 아트덤보의 유 츠웨이(50) 대표가 서점으로 유명한 대만의 청핀(誠品)그룹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비틀매니아 Beatlemania'라는 타이틀로 비틀즈 사진전을 가지면서 본격적인 콘텐츠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후 2013년 한화그룹의 요청으로 63스카이아트갤러리에서 '비틀즈 제너레이션 Beatles Generation'이란 이름으로 전시회를 가졌고, 2014년 대만 화산 문화지구에서 다시 '비틀즈 투마로우 Beatles Tomorrow'라는 타이틀로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주)티비티컴퍼니와 함께 오는 8월 6일부터 11월 7일까지 중국 윈난성 쿤밍시의 쿤밍파크에서 대규모 비틀즈 전시회를 개최하게 됨으로써 비틀즈를 소재로 한 전시콘텐츠의 발전 가능성이 한층 커지게 되었다.

    유 츠웨이 대표가 비틀즈 프로젝트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지난 10년 동안 비틀즈 전시회를 기획하고 콘텐츠를 발전시켜 온 유 츠웨이 대표는 이렇게 답변했다. "비틀즈의 삶과 영향력이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자신들의 미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틀즈가 1960년대의 밴드이지만 젊은이들 스스로 비틀즈를 자신의 미래에 투영시킬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어 "젊은이들이 비틀즈 사진도 찍고 직접 만져보고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전시회를 제공함으로써 젊은이들 스스로 주도적으로 문화를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콘텐츠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 8월 비틀즈 전시가 열리는 중국 윈난성 쿤밍 파크 전시관모습과 전시 포스터.(사진=티비티컴퍼니 제공)

     

    유 츠웨이 대표는 오는 8월 윈난성 전시는 내년에 개관하게 될 장흥의 <비틀즈 투마로우="" 아트="" 스페이스="">를 염두에 두고 그동안의 전시경험을 총동원하여, 더욱 많은 콘텐츠를 투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조순옥 대표는 아트덤보와 함께 중국 윈난과 장흥의 프로젝트를 연결시킴과 동시에 중국에 이미 구축되어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국의 여타 지역과 일본으로 비틀즈 전시 프로젝트를 확장시킨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비틀즈 투마로우="" 아트="" 스페이스="">의 전시작품 구성과 창작에 아틀리에 입주작가들을 참여시킴으로써 하나의 문화콘텐츠가 장흥이라는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고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다.

    내년부터 10년간 운영될 상시전시공간 <비틀즈 투마로우="" 아트스페이스="">는 어떻게 꾸며질까? 일단 비틀즈의 한정판 사진 100장, 그리고 비틀즈를 찍어왔던 유명작가들의 사진 전시실이 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전시 콘셉인 상상력과 영감으로 재현되는 재현공간, 체험공간, 각종 미디어 작품의 전시실을 갖추게 된다. 전시관 규모는 총 500평이다.

    이 전시관 바로 옆 '아트 비 아틀리에(art vie atelier)' 입주작가들은 협업을 통해 비틀즈 이미지를 재창조한다. 예컨대 피아노 조각과 존 레논의 조각을 움직이는 장치로 연결해 실제 연주하는 것처럼 무대장치를 설치할 수도 있다. 이곳에 입주하는 30~40대 작가 20여 명은 각자 비틀즈에 대한 인상을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해낼 것이다. 이로써 비틀즈 전시관을 찾은 관객들은 비틀즈 이미지를 재창조한 작가들의 작업공간과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

    '아트 비 아틀리에' 대표작가인 김택기씨가 비틀즈 상설전시관과의 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임한길 제공)

     

    '아트 비 아틀리에'의 대표작가인 조각가 김택기씨는 이곳의 장점을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레지던스 상주 작가들은 5년에서 10년 단위에 장기 입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작가들이 안정적인 예술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임시 입주공간 이상의 사업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우선 미니 경매를 통해서 고객들과 직접 만나는 계기를 만들 생각이다. 다음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예술교육프로그램을 활성화해 예술체험공간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나아가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작가 레지던시와 작가교류프로그램을 유치함으로써 국제적인 네트워크도 만들어갈 계획이다.

    비틀즈 상설전시관 운영기간은 왜 10년인가? 조순옥 대표는 에딘버러 축제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에딘버러의 시작은 하나의 작은 콘텐츠였다. 이러한 작은 시작이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것이 문화의 힘이다. 예술가들과의 협력은 지속적으로 계속될 때 천천히 성숙시키고 예술가들에게 시간을 주어야 한다. 예술과 문화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가지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와인과 똑같다."

    유 츠웨이 아트덤보 대표도 "덤보라는 심해 물고기는 수심 3천미터의 빛도 없는 곳에서 스스로 빛을 낸다고 한다. 아티스트란 바로 이런 모습이다."고 거들었다. 예술의 비전이란 이런 것인가. 5년후, 10년 후 <비틀즈 투마로우="" 아트스페이스="">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을 지 자못 궁금해진다.

    ◈ 비틀즈가 전설의 락 그룹이 되기까지 ◈
    "대중음악사상 최초로 앨범에 가사를 인쇄했다."
    "대중음악사상 최초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대중음악사상 최초로 운동경기장에서 공연을 가졌다."

    바로 비틀즈의 얘기다. 1963년 영국 리버풀에서 결성되어 1970년 공식 해체하기까지, 아니, 해체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비틀즈가 미친 영향력은 음악분야에 그치지 않고 사회,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매우 막강하다.

    세계 곳곳에서 열광적인 팬덤현상인 '비틀매니아(beatlemania)'를 불러일으킨 비틀즈의 인기는 무엇 때문일까?

    우선, 음악적인 차별성을 들 수 있다. 당시 여느 밴드와는 다른 '차이'가 있었다. 비틀즈는 멤버 모두가 노래를 하는 밴드라는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멤버들의 악기 사운드가 균형 잡힌 조화를 이루는 밴드였다.

    로큰롤과 리듬 앤 블루스, 재즈 등 새로운 미국음악이 빠르게 소개되고 있던 항구도시 리버풀 출생이었다는 점도 비틀즈가 음악적으로 실험적이며 새로운 것을 끊임 없이 추구하는 밴드로 성장하게 된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틀즈 음악의 핵이었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10대 시절부터서 리버풀로 빠르게 흘러 들어오는 미국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버디 홀리와 척 베리와 같은 미국의 로큰롤 스타들을 흠모하며 자신의 음악적 기량을 발전시켜 나갔다. 리버풀은 당시 이런 음악적 환경 속에서 '스키풀 사운드'라는 리버풀만의 음악을 탄생시켰고 초기 비틀즈는 이 스키풀 사운드에 새로운 미국음악의 영향을 수혈 받으며 비틀즈만의 개성 있는 음악을 탄생시켰다.

    또한, 비틀즈는 스스로 작사, 작곡을 하는 밴드였다는 점에서 여느 밴드와는 다른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밴드들이 유명 아티스트의 곡을 연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지만, 비틀즈는 다른 밴드들의 공연에서는 들을 수 없는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아직 영국에 소개되지 않은 새로운 음악들을 연주하는 한편, 스스로 개성 넘치는 곡들을 만들어냄으로써 기존 밴드와는 완전한 차별화를 이루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악보를 읽을 줄 알거나 쓸 줄 아는 것은 아니었다. 순간순간 영감을 받을 때마다 흥얼거리던 가사를 메모하고 기타연주로 멜로디를 만들고 다듬는 방식으로 불후의 명곡들을 한 곡씩 탄생시켰다. 이러한 창작력은 독일 함부르크에서의 클럽밴드 시절 수 많은 공연을 반복하면서 연마되었고, 그들이 리버풀로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비틀즈는 창작력 뿐 아니라 연주력과 관객을 휘어잡는 무대 연출력까지 갖춘 전천후 밴드로 성장해 있었다.

    '비틀즈의 영원한 매너저'이자 '비틀즈의 다섯번 째 멤버'라는 별명으로 불린 브라이언 엡스타인(Bryan Epstein)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꼽을 수 있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당시 음반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비틀즈'의 레코드를 찾는 소년 소녀들이 늘기 시작하자 비틀즈가 연주하고 있던 캐번클럽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들의 매니저가 되기로 계약을 하게 되었다. 이 만남은 비틀즈라는 '진주'가 세상 밖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거칠어 보이는 비틀즈를 양복과 넥타이를 맨 단정한 밴드로 이미지를 쇄신하게 하였고, 단정한 밴드 이미지 변신으로 로큰롤 스타에 대한 반항아적 이미지에 저항감을 가지고 있던 당시 기성세대까지 비틀즈의 열광적인 팬으로 흡수하게 되었다.

    비틀즈는 팬들의 열광적인 연주에 그리 연연해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더 나은 음악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열정을 잃지 않았다. 비틀즈는 끊임 없는 음악적 실험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 스스로 기쁨을 느꼈고 환희를 느꼈다. 이런 음악적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멈출 줄 알았다. 그래서, 너무 잦은 순회공연에 지친 나머지 음악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지 못하게 되자 1965년 12월에 열린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 공연을 갖지 않게 되었다. 폴 매카트니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화가 신세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냥 그림을 들고 팔러 다니려고 여기저기 다녀야 했던 겁니다. 그러다 갑자기, 누군가 우리에게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작품에 얼마든지 시간을 쏟을 수 있어."라고 했던 거죠. 그래서 당연히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것이 다시 투어를 다니는 것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된 겁니다." 비틀즈는 이때부터 대중음악사의 새 장을 다시 열었다. 그들이 시도한 스튜디오 레코딩 작업과 새로운 사운드의 도입을 위한 진지한 노력들은 대중음악계 뿐 아니라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가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하는 변화를 일으켰다.

    1960년대 젊은이들이 꿈꾸며 추구했던 평화와 자유, 사랑을 음악으로 대변했던 비틀즈. 그들이 음악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꿈과 열정은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도전과 용기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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