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금융위원장 (사진=윤창원 기자)
정부가 해운업계의 합병 방안을 일축했으나, 현실적으로 구조조정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두 회사 간의 살아남기 경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6일 구조조정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방안은 "시기상조일 뿐 아니라 적절치 않다“고 일축했다. 그 대신 자율협약을 통한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각각 채권단이 요구하는 조건을 이행하는 과정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꾀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운업계의 구조조정은 한진해운 현대상선 두 회사 간 생존 게임의 구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채권단의 요구 사항을 이행하지 못한 회사는 법정관리로 가고, 결국 쪼그라들어 살아남는 회사에게 흡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임 위원장도 “두 회사의 경영정상화 방안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게 되면 해운산업의 상황, 채권회수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어느 정도 가닥을 잡게 되는 시점”을 전제로 해운업계 재편 방침을 시사한 바 있다.
현재 채권단의 요구 사항은 크게 봐서 해외 선주들과의 협상을 통한 용선료 인하, 유력 국제 해운동맹 가입, 사채권자의 고통 분담 동의 등으로 정리된다. 대주주의 사재 출연도 채권단의 요구 조건 중 하나로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현대상선 홈페이지 캡처)
먼저 현대상선은 일찌감치 자율 협약을 준비해온 만큼 용선료 협상과 해운동맹 가입, 사채권자 채무 조정 등 쟁점사항에서 진도가 많이 나가 있는 상황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현대증권 매각에 성공했고, 해외선주들과의 용선료 인하 협상도 순조롭게 진행돼, 정부가 제시한 시한인 5월 중순까지 협상 완료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해운동맹의 유지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상선이 속한 해운동맹 G6는 대형 2개 선사가 이탈하면서 4개 선사로 줄었지만, 최근 쿠웨이트 UASC와의 합병을 발표한 독일의 하팍로이드가 건재한 만큼 동맹 유지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현대상선 측의 설명이다.
반면 한진해운은 이제 자율협약을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용선료 협상 등 주요 쟁점 사항의 일정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한진해운이 소속된 CKYHE 얼라이언스의 경우 중국 코스코 등의 이탈로 급격히 힘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에서 한진해운에 대해 상대적으로 불투명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이다.
이에 대해 한진해운 관계자는 “그동안 세계 해운동맹의 재편에 대해 예의주시해왔으며, 곧 대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 측에서는 “해운업계의 경영정상화와 관련해 최근 관심이 재무 금융적 측면에 집중되면서, 회사가 갖고 있는 국내외 네트워크, 글로벌 신인도, 서비스 수준 등 산업적 측면이 지나치게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며 “과연 어느 회사가 향후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한진해운이 보유하고 있는 국내외 네트워크, 글로벌 신인도, 상대적으로 낮은 부채비율 등 강점들이 역설적으로 용선료 협상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잇다는 시각도 있다.
한진해운 (사진=황진환 기자)
해외 선주들은 한진해운의 용선료를 낮출 경우 용선료 인하 요구가 세계 곳곳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한다는 것이다.
일단 한진해운은 자구안 이행의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340억원 규모의 에이치라인해운(H-Line) 잔여 지분 5%(52만6천316주)의 처분 계획을 공시한 데 이어 채권 재조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다음 달 19일 사채권자 회의를 소집할 계획이다.
채권단이 요구하는 자구안의 이행 속에 앞으로 한 달 정도가 지나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라는 국내 양대 선사가 걸어갈 운명도 가닥을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재 경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진해운이든 현대상선이든 세계 해운업계에서 볼 때 이 정도 되는 회사는 없애기보다는 새로 만들기가 훨씬 어럽다”며 “한국 해운업의 경쟁력을 잃지 않는 구조조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