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문건') 수사팀이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않고 철저하게 (관련 대상자의) 통화 내역을 조회하고 위치를 추적했다" 이 말은 김수남 검찰총장이 지난해 11월 19일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발언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심지어 검찰내부에서조차 이 말을 진실이라고 믿지 않았다. 법원도 1심에 이어서 29일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의 판결문을 살펴보면 검찰의 수사가 얼마나 정치적이었고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윤회 문건 기재내용 자체가 대통령 친인척 비리관련 내용이 아니어서 박지만 EG회장에게 전달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수긍된다"며 "박관천 경정 역시 원심에서 조 전 비서관에게 그런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는 재판부가 '조응천(54)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박관천 경정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58) EG회장에게 정윤회 문건을 전달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정한 것이고 조 전 비서관이 문건을 전달할 이유가 없다고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도 1심에 이어서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통령기록물법의 입법 목적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위한 것"이라며 "원본이 정상적으로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된 이상 복사본이나 추가 출력물을 이관하지 않은 걸 처벌하는 건 형법상 금지된 유추해석"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조 전 비서관은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정윤회 문건' 등 청와대 내부 문건 17건을 박지만 회장 측에 수시로 건넨 혐의에 대해서도 16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다만 박 경정이 조 비서관의 지시없이 단독으로 건넨 '정윤회 문건' 단 1건의 유출 행위만 공무상 비밀 누설로 인정해 이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모두 파기되고 박관천 경정이 '정윤회 문건'을 독단으로 빼돌린 행위 하나만 인정됨으로서 검찰은 할 말을 잊게 됐다.
검찰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고 대법원에 상고 할 지 말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던 김수남 검찰총장의 청문회 발언은 빛을 잃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이른바 '정윤회 문건'은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지시로 작성해 보고한 문건"이라며 유출사실을 극구 부인해왔다. 김수남 총장은 그러나 청문회에서 "이 문서에 나오는 내용은 모두 조응천(53)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박관천(49) 전 경정에게 지시해서 허위로 작성한 내용"이라고 반박해왔다.
문제는 '정윤회 문건'의 진위논란에 대해 검찰이 진실여부를 제대로 가리지 않은채 '청와대 문건'은 '찌라시'로 '문건 유출 사건'은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한 박근혜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당시 검사 출신인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김하중 교수가 SNS를 통해 "검찰의 정윤회 문건 수사결과를 보면 한마디로 실체적 진실 발견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청와대와 여당의 입맛에 맞춘 수사"라면서 "검찰 인사권을 쥐고 있는 대통령 최측근 비서들이 연루된, 대통령 친동생과 옛 참모의 권력다툼 사건을 어떻게 검찰이 철저히 조사할 수 있겠느냐?, 이 사건은 성격상 처음부터 특검으로 갔어야 마땅한 사건이었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판결 소식을 들은 검찰고위직 출신의 한 중견변호사는 "당시 검찰은 수사를 했다기보다는 청와대의 지시에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져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은 조응천 전 청와대 전 공직기강비서관(54)이 "사필귀정"이라며 자신을 기소한 검찰을 비판했다.
조 전 비서관은 선고 직후 서울고법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필귀정, 애초부터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였다"며 "검찰이 상고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