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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새책]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

    편리한 마트 뒤에 숨은 자본주의의 은밀한 욕망

     

    시장과 동네 슈퍼, 자영업 가게와의 대결에서 유독 대형 마트만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간 '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은 편리함, 싼 가격, 쾌적함 등으로 상징되는 대형 마트의 실상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생활에 플러스가 된다"는 마트의 포장과 달리, 오히려 마트가 우리에게 주는 것보다 빼앗아가는 것이 더 많음을 이야기한다. 또한 마트가 어떻게 우리의 욕망을 조종해 소비를 유도하는지, 마트 중심의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이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마트가 어떻게 개인의 삶을 지배하고 지역과 공동체, 자연까지 파괴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나아가 마트에 지배당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한다.

    19세기 프랑스의 아케이드가 19세기 인간의 환상과 꿈, 욕망을 집약한 장소였다면, 21세기에는 ‘대형 마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형 마트를 연구한다는 것은 우리 세계의 소비 생활에 감추어진 환상과 욕망의 이면을 알아보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대형 마트가 어떻게 우리에게 화려함을 포장해 소비로 이끄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마트가 "상품을 하나 사놓을 때마다 당신의 삶이 바뀌고 지금과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주문을 끊임없이 건다고 말한다. 사실 팍팍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삶의 패턴을 바꾸거나 이웃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트는 '이것 하나만 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앵무새처럼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러한 소비 패턴이 결국 공동체와 관계를 깨트려 사회를 개인화시키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마트는 우리에게서 '주체적으로 소비할 자유'를 빼앗는다. 꼭 필요한 것만 사고, 없으면 빌려 쓰는 생활을 마트는 인정하지 않는다. 저자는 마트가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소비를 유도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마트는 수많은 포장지와 광고문구들, 가격 할인을 홍보하는 문구로 도배되어 있다. 또한 각종 미디어를 통해 최신이라는 이미지를 담은 영상을 지속적으로 내보낸다. 사람들은 영상 속 연예인들의 화려함을 동경하고, '그들에게는 있으나 나에게는 없는 그 무엇'을 사기 위해 마트로 간다.

    마트는 유행의 생성뿐 아니라 소멸까지 유도한다. 19세기 폐허가 된 아케이드는 유행에 뒤처진 물건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이 폐허의 장소를 현재는 우리네 냉장고와 옷장이 대신한다. 사람들이 마트에서 사들인 물건들은 냉장고와 옷장 속에서 잊히고 만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마트가 소비자에게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우리가 필요에 의해 구매하는 것인지 아니면 화려한 외관의 최면에 빠져 사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고 경고한다. 덧붙여 독자들에게 마트가 주는 환상의 이면을 직시하고, 주체적으로 소비할 방안을 모색하라고 말한다.

    이 밖에도 마트가 도시 사회의 자원과 부, 에너지 등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과정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비윤리적인 임금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화석연료 등으로 자연을 착취하며, 제3세계의 먹거리를 착취하는 마트의 무불별한 행태들을 언급한다. 나아가 마트가 등장하면서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한 전통 시장, 동네 골목, 마을 공동체 등을 다양한 사례와 도표를 통해 살펴본다.

    이처럼 이 책은 마트 중심의 소비가 가져다주는 폐해를 조목조목 설명하고 마트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안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마트가 무너뜨린 공동체와 관계를 회복하는 것에 있다. 특히 자본주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생활협동조합이나 동네에 있는 골목가게, 전통시장, 사회적 경제 등을 재발견"해야 한다는 그의 제안은 눈여겨볼 만하다.

    본문 중에서

    마트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공간이며, 관계로 해결할 문제를 소비로 해결하도록 권장하는 공간이다. 서로의 눈빛과 얼굴 표정을 보며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면서 단골이 되고, 거래처가 되는 것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마트는 편리와 효율을 가장한 외로움과 고립무원으로 향하는 관문이다. 그래서 마트를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관계를 회복하려는 일말의 희망을 의미한다. _ 20쪽, 〈제1장 - 소박한 삶, 소박한 공동체를 꾸릴 권리〉

    마트에서의 소비는 물건들 틈에서 길을 잃게끔 설정된 복잡한 미로를 따라 집착이나 도착이 강렬해지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마트는 마치 '득템'을 바라며 가상공간을 헤매는 게이머처럼 소비자들의 탐색과 집착의 시선을 매우 자연스러운 것인 양 만들어버린다. 또한 수많은 광고와 이미지에게 소비를 위한 결단을 맡기는 우스운 상황도 발생한다. 그러한 점에서 마트는 소비라는 결사와 결단, 결의, 연대의 자유조차도 빼앗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_ 75쪽, 〈제2장 -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소비할 자격〉

    공동체와의 거래에는 단지 싸다는 이유만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그 거래에는 사실상 사람들 사이의 사랑과 돌봄의 감정을 유통시키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었다. 그 속에 스토리와 감정표현이 있었고, 공동체의 오래된 꿈이 성숙되고 발효되었다. 그 꿈은 오랫동안 유지되던 생명 평화의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트에도 공동체의 꿈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저 각각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미디어에서나 나올 법한 환상은 아닐까? _ 132쪽, 〈제3장 - 꿈꿀 자유, 사랑할 자유〉

    다양성·복수·여럿이 왜 중요할까? 그것은 내부에서 도가니처럼 들끓는 북적거림과 풍부함과 수다스러움이 공동체를 살아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관계망이 풍부해지고 지혜와 아이디어가 샘솟게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소수자와 이방인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마을과 공동체 안에서 아주 특이하고 색다른 방식의 스토리가 생겨나 수다스러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_ 178쪽, 〈제4장 - 어중이떠중이와 공존하는 법〉

    마트를 가지 않는 것은 그저 다가올 문명에 대한 수용적이고 수동적인 받아들임이 아니다. 이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안 사회를 구성하고 만들려는 실천이다. 대안은 아주 가까이에 서식하고 있다. 우리 주변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 관계와 의미를 주목할 때 문명의 전환은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저 마트를 가지 않겠다는 결단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일상을 바꾸어보자고 제안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혁명가도 없고, 혁명 운동도 없고, 혁명적인 이론도 없지만 우리의 도처에서 우리를 바꾸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변화'를 초래한다. 이러한 혁명적 낙관주의는 문명의 전환을 이끄는 효모이자 촉매제라고 할 수 있다. _ 235쪽, 〈제5장 - 자본의 욕망에 흔들리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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