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대표간 청와대 회동으로 시작된 협치 실험이 불과 3일 만에 위기를 맞았다.
국가보훈처가 16일 '임을 위한 행진곡'의 현행 합창 방식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야당이 강력 반발하는 것은 물론 여당도 유감을 밝히며 재고를 요청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희생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사후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노래다.
80년대 대학가와 유족 추모제 등에서 불리다 1997년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2003년부터는 정부 행사에서 공식적으로 제창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후 2009년부터는 제창 대신 공연단 합창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후에는 공식 식순에서조차 빠졌다.
이에 따라 5.18단체와 시민사회는 최근 3년간 기념식 참석 자체를 거부하면서 반쪽짜리 행사가 됐고, 보훈처는 이 노래의 북한 연계설 등을 제기하면서 이념 및 국론 분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때문에 최근 청와대 회동에서 박 대통령이 국론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좋은 방법을 찾도록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밝히면서 해묵은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그러나 보훈처는 이날 "참석자 자율의사를 존중하면서 노래에 대한 찬반 논란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현행대로 합창을 하되 원하는 사람은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방침을 정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관련 사항에 대한 언급 자체를 자제함으로써 소관부처의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
특히 보훈처 관계자는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볼 것을 보훈처에 지시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언론보도 이외에 별도 지시나 지침은 없었다"고 밝혔다.
보훈처의 독자적 결정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은 야당 원내대표들에게 허언을 한 셈이 됐다.
이는 또 보훈처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 방침을 청와대가 묵인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야권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박승춘 보훈처장의 해임촉구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만일 5·18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지 않는다면 이 정권에 협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며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박승춘 보훈처장 해임촉구결의안 채택으로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결국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는 민생경제 위기와 안보불안 등 가뜩이나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노래 하나 때문에 국론을 찢어놓는 '협량(狹量)'의 '좁쌀 정치'로 퇴행하는 결절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보훈처 결정 내용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빼놓고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에만 먼저 알려준 처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이에 대해 문제를 삼았고, 박 원내대표와 현 수석 간에도 사전통보 내용을 미리 공개한 것을 놓고 티격태격했다.
현 수석은 박 원내대표가 보훈처 발표가 있기 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한 사실을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 수석으로서는 개인적 차원에서 박 원내대표에 미리 알려줬는데 왜 공개함으로써 자신을 난처하게 했느냐 하는 서운함의 표시였을 것이다.
하지만 더민주 쪽에선 청와대가 국민의당에만 통보한 것을 두고 야권을 분열시키기 위한 고도의 술책 아니냐는 의구심도 보이고 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청와대는 국민의당과만 파트너십을 만들겠다는 건지 왜 국민의당에만 통보했는지 이해가 안간다"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4.13 총선 참패 이후 여야 3당 원내대표들과의 회동을 통해 협치를 시도하고 나섰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로 인해 협치의 원만한 행진에 중대 걸림돌을 맞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