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 총리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익히 알려진 대로 전쟁범죄자의 자손이다.
그의 외조부는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 상공대신이었던 기시 노부스케로, 침략 전쟁에 앞장섰다가 '쇼와(히로히토 일왕)의 요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체포된 기시는 간신히 기소를 면한 뒤 공직추방 처분을 받았지만 1953년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돼 다시 정치 일선에 올랐다.
이후, 일본이 패전국으로 받아들인 평화헌법의 개정을 추진하고 총리가 되어서는 이를 목적으로 헌법조사회를 내각에 설치했다.
기시의 피를 이어받은 아베는 일찌감치 일본 정계의 보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세이케이대 정치학과에 재학할 때부터 헌법 개정을 외쳤고, 1997년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의 사무국장을 맡아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연행 사실을 교과서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해왔다.
특히 이 무렵 위안부 문제를 두고 "한국에는 기생집이 많아 그런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지난 2007년 유기홍 의원이 확보한 자료 공개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기도 했다.
그런 아베 총리가 일본의 침략전쟁 사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은 숙제였던 듯하다.
2006년 2월 관방장관 당시엔 침략전쟁 인정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쟁을 정의하는 일은 정부의 일이 아니다, 역사가의 판단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답변을 회피하더니 그해 10월 총리에 올라서는 "전쟁개시로 많은 일본인이 목숨과 가족을 잃었으며 아시아인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나의 조부를 포함한 지도자는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총리에서 물러난 뒤 다시 자민당 총재 경선을 출마하던 2012년 8월엔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담화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담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담화 등 모든 담화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 사실과, 식민지 지배 및 침략 전쟁 사실을 모두 부인한 셈이다.
2013년 4월에도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고,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서 어느 쪽의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말했으며, 지난해 8월 기자회견에서 역시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침략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역사가의 논의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일본 우파의 지지를 얻는 자신의 보수적 정치색을 유지하려는 의도와 더불어, 침략 전쟁을 일으킨 전범 자손임을 애써 부인하려는 속셈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런 아베 총리이지만, 속내가 들키는 장면이 나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는 18일 일본 국회에서 헌법 9조 개헌을 두고 제1야당 대표와 격론을 벌이다 "다른 나라를 짓밟는 일은 두번 다시 하지 않는다, 다시는 전쟁의 참화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며 평화주의다"라고 말했다.
평화헌법을 개정해도 문제될 것 없다는 취지의 발언인데, 결국 과거에 다른 나라를 짓밟은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 됐다.
어떻게든 침략 전쟁 사실을 부인하려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이란 완고한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 우리의 의향, 우리의 열망이 지시한 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로 인해 사실과 증거의 상태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미국의 보스턴 학살 사건에서 오히려 영국군 장교를 변호했던 존 애덤스, 미국 2대 대통령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