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 아들과의 대화법을 고친 후 우리의 대화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해라', '하지 마라'는 지시어가 삭제되었다. 대화란 상대방의 숨겨진 마음을 끌내 진솔한 마음을 아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시어로는 불가능하다. 상대방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낼 수 있는 대화법은 질문법이다. 그러나 "했어, 안 했어", "잘 했어, 잘못했어" 등 결과를 묻는 것은 질문이 아니라 취조다. 뻔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인정하게 만들 때는 극약처방과 같은 것이다. 부모가 자녀와의 대화에서 자녀의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유는 일방적으로 지시어를 남발하기 때문이다.-6장 '자식의 공부, 인성, 성공을 모두 잡은 10가지 대화법'에서
신간 '양육의 신'의 저자 이정숙은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미국에서 컴퓨터 게임 문제로 아이들과 크게 싸웠을 땐 아이들에게 준 자율권도 소용없어 보였다. 그때 마침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님의 대화법 조언이 없었더라면 아이들의 성장과 모자간의 관계는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대화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 그 사람이 숨겨둔 생각을 끄집어내도록 하는 것’이라는 대화의 본질에 관한 깨달음은 두 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 되었을 뿐 아니라, 두 아들이 성적과 인성, 행복, 사회적 성공을 거둔 주춧돌이 되었다. 직접 배우고 깨달은 대화법은 책의 마지막 장에 10가지로 정리해 소개한다.
저자 이정숙은 동생들을 두 명의 변호사 한 명의 대학교수로 성장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개성 강한 두 아들을 세계적인 인재로 키워낸 자녀 교육 이야기와 노하우를 총정리해 담았다. 자식 문제로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그로 얻은 양육의 지혜를 나눠주고자 가슴 아픈 가족사도 고심 끝에 처음으로 공개하였다. 워킹맘으로서의 육아 경험, 미국 유학 중 직접 경험한 유대인 자녀교육법 등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귀중한 교훈을 알려준다.
저자는 일하는 엄마나 아이를 키우는 데 빵점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어떻게 아이를 길러야 할지, 자립심 있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은 무엇인지, 어떤 대화로 아이와 깊은 관계를 만들어나갈지 등을 개인적인 일화 안에서 풀어나간다. 저자는 어린 시절에 겪은 뼈아픈 경험과 학원 폭력에 시달린 아이의 상처, 언어 장벽으로 컴퓨터 게임에 빠진 아이들과의 싸움 등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주면서 아이들의 성공은 비단 좋은 집안 환경이나 타고난 재능이 아닌 부모의 양육 방법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부모가 먼저 아이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소신대로 아이의 자립심을 키우는 데 인내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해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올바른 부모 노릇의 중심 원칙은 ‘부모 자신이 자식보다 사회의 미래 트렌드 변화를 바르게 읽어낼 자신 없으면 자식의 진로를 섣불리 지도하려고 하지 않는다’, ‘엄마가 당당해야 아이도 당당하게 자란다’, ‘엄마의 지나친 뒷바라지는 오히려 자식의 미래 성장에 방해가 된다’ 등이다. 이를 기본으로 하여 한국에서 방송을 진행하면서 얻은 심리학과 인지과학적인 육아 지식과 유학 생활 중에 배운 선진 자녀교육 방법을 과감하게 실천하였다. ‘늦은 밤에 젖먹이가 잠투정을 해도 기 싸움에서 밀리지 말고 울다 지칠 때까지 둔다’, ‘정직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자기 일은 직접 처리할 것 등의 기본 원칙만 지키면 자율권을 준다’, ‘자발적으로 고백한 일, 의논을 청한 일이 아니면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엄격한 규칙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대신 엄마도 아이들의 자율권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는다’, ‘철저한 경제관념을 가르친다’ 등이 실천적 교육 지침이 되었다.
책 속으로잘못을 저지르지 않고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열심히 일하고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가장, 죽어라 뒷바라지하고도 가족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전업주부, 최선을 다해 공부하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 성실하게 일하고도 실적을 내지 못하는 직장인, 그리고 가사와 직장 일을 병행하느라 육아와 가사에서 빈틈이 보일 수밖에 없는 맞벌이 주부 등 알고 보면 남보다 더 열심히 살고도 비난을 감수하며 불필요한 죄책감으로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커뮤니케이션, 심리학 등의 강의를 통해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죄책감을 갖는 태도가 자신과 타인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부모가 맞벌이하느라 자식 뒷바라지에 소홀한 것이 미안해 다른 아이들보다 더 좋은 장난감과 옷, 학용품을 사주는 것은 아이들 양육에 오히려 해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 2장 ‘직장생활과 양육 사이에서 직장생활을 선택하다’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희생하면 보상을 받고 싶어 한다. 자식에게 돌려받을 목적으로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는 없겠지만, 보상심리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가 자식이 조금만 섭섭하게 행동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며 원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희생의 대가를 바라는 심리적 기저에서 나온 말 아닐까?
- 4장 ‘완벽한 부모 노릇이 자녀를 무능하게 만든다’에서
두 아들의 유대인 친구들은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대부분의 용돈을 스스로 벌어 썼다. 유대인들은 자식들에게 용돈을 그냥 주지 않고 빌려준다. 나중에 반드시 갚아야 하기 때문에 유대인 아이들은 부모에게 돈 더 받기를 꺼린다. 물론 유대인 부모들 중에는 부유한 사람들도 많다. 자식들에게 비싼 음식점에 데려가거나 미술관 등에 데려가기, 꼭 필요한 비싼 옷 사주기 등 품위 있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부자도 현금 지불을 잘 안 한다. 유대인 부모들은 부잣집에서도 자식이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빵 굽기와 설거지를 직접 하도록 한다. 어떤 돈도 공짜로는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유대인 교육을 좋아하면서도 그런 것은 따라 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유를 물으면 미국과 한국은 여건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몇십 년 전까지 유대인들은 우리보다 여건이 낫지 않았지만 그래도 실천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 멸시 기류가 사라진 지 얼마 안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꿋꿋이 자기 방식으로 자녀 교육을 해서 지금은 전 세계의 교육열 높은 부모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 4장 ‘완벽한 부모 노릇이 자녀를 무능하게 만든다’에서
이정숙 지음/세종서적/300쪽/15,000원
신간 '아가야, 너를 만나 행복해!'는 아빠와 엄마가 아이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책이랍니다. 남자와 여자가 아빠와 엄마라는 이름을 얻음으로 성숙해지고 아이에게 사랑을 배우게 된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지요.
결혼을 앞둔 남녀, 아가를 갖기 위해 준비 중인 부부, 배 속에 아가가 찾아온 예비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족에게 저자는 이 책을 권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족이 되었지요.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아가가 찾아왔어요. 아가가 찾아왔을 때 부부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이제 아빠와 엄마라는 이름을 얻게 된 부부. 아빠는 여기저기 소식을 알리고 엄마는 아직 부르지도 않은 배를 만지며 기뻐했을 거예요. 아빠와 엄마는 아가의 존재를 안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잊어버리지 않도록, 모두 꼭꼭 기억하고 싶어 하겠지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던 남녀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은 매우 커다란 일이랍니다. 그래서 결혼을 인륜대사라고도 일컫지요.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 때문에 티격태격하면서도 맞춰 가는 것은 그만큼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 남녀는 성숙해 간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아가가 생긴다면요?
아가가 찾아오는 순간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더 조심하게 된답니다. 생각도 더 많아지고요, 더 신중해지지요. 가족 한 명이 늘어나는 것뿐인데 아빠와 엄마라는 이름의 책임감은 엄청난 거거든요.
임선경 지음/임선경 그림/단비어린이/32쪽/12,000원
엄마 아빠는 어떻게 만났을까? 어떻게 결혼을 했을까?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결혼에 부쩍 관심이 많아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신간 '엄마 아빠 결혼 이야기'는 결혼에 대한 질문이 많아진 우리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시원하게 풀어줍니다. 따뜻한 봄날 아빠의 고백부터 온 가족이 모인 결혼식 풍경까지! 결혼식 준비와 풍경은 물론, 부모님의 따스한 사랑까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일요일 오후, 준이가 결혼 앨범을 꺼내옵니다. 글쎄 지혜와 결혼을 하겠다면서 말이죠. 준이의 깜짝 선언 덕분에 엄마 아빠는 다시금 가깝게 붙어 앉아 오랜만에 결혼 앨범을 보기 시작합니다. 분홍 봄날, 아빠는 엄마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어, 두 사람은 서둘러 결혼을 준비하지요. 막상 결심을 하고 보니 해야 할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 준비하면서 엄마 아빠는 진짜 부부가 되었습니다.
윤지회 지음/윤지회 그림/사계절/40쪽/ 13,000원
박명균 에세이 '나는 언제나 술래'는 전남고흥 대산부락에서의 어린시절부터, 서울 신월동에서의 청년시절, 그리고 일산에 정착한 현재까지 과자장수 '맹긴이' 자신과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1970년 전남 고흥군 두원면 대산부락에서 첫울음을 터뜨렸다. 집안에서는 ‘맹긴이’로 불렸다.
여덟 살 되던 해 서울로 이사와 신월동에서 골목대장 맹긴이로 살았다. 수많은 개띠 소년 중 하나로 특별할 거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내다 신월중학교 3학년 때 '전태일 평전'을 읽고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 후, 발산동 명덕고등학교로 진학했는데, 당시는 전교조가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문예반을 만들어서 교육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다. 학교는 그만 다니고 싶었으나 부모님이 말려서 졸업은 했다. 그즈음 그동안 썼던 글을 모아 책을 냈다. '친구야 세상이 희망차 보인다'(동녘, 1990).
대학 입시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가방에는 교과서 대신 소설책이 두툼하게 들어 있었다. 그때 읽었던 천 권의 책과 고등학생운동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가 글의 밑천이었다.
졸업 후, 막노동을 2년 정도 하다가 군대를 다녀왔고, 다시 막노동을 하다가 결혼을 했다. 잠깐 직장을 알아보다가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과자 장사가 19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박명균은 1990년 당시 동녘 출판사의 디딤돌 시리즈인 '불량제품들이 부르는 희망노래'(동녘, 1990), '이제 거진 어른인걸요'(동녘, 1990)의 주요 필자로 참여했다.
박명균 페이스북
www.facebook.com/100008471776300
책 속으로아침에 6시쯤 페이스북이 날 깨운다. 30분쯤 댓글을 달고 친구들이 간밤에 고민한 걸 공짜로 엿본다. 7시 30분쯤 도매상에서 물건을 싣고 저녁 7시까지 장사를 한다. 저녁에 돈 계산하고 밥 먹고 졸음이 몰려오면 살살 글을 써본다.
글을 쓰려고 TV와 술, 소파를 끊었다. 본의 아니게. 난 정말 글 쓸 조건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우습게도 지금은 그냥 쓴다. 2시간 정도 썼는데 글이 조금씩 길어져서 지금은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 글이란 게 컴퓨터 앞에 앉으면 저절로 써지면 좋은데 쉽지가 않다.
아내가 밥을 많이 주는 날은 감정이 분산되기에 글쓰기가 힘들다.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몸이 피곤하면 섬세한 글이 도망간다. 무미건조한 글자만 남는다. 글자만 남아있는 글을 몇 번 써보다 어쩔 수 없이 지운다. 조금 더 긴 이야기를 쭉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내가 쓴 글들은 대부분 운전하면서 쓴 글들이다. 아침에 머리가 맑아서 출근 시간 운전 중에 제일 많이 쓴다.
어떤 주제나 이야깃거리가 문득 생각이 나면 그 장면을 계속 생각한다. 로또 맞으면 돈을 어디에 쓸까 상상하는 것처럼. 그러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과거에서 상황과 주변, 인물을 가져오고, 이야기 주제는 운전 중인 지금의 내가 정한다. 신호대기 중에 장면을 연상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을 메모한다. 내 글에 나오는 중에서 좋은 문장은 대부분 이렇게 운전하면서 얻어진다.
묘하게도 그 절절했던 장면이 거래처에 들어가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내가 한 생각을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 그 상황을 놓치면 결국 글자만 남는다.
정말 내 가슴에 와 닿는 문장이 있고 메모할 상황이 아니면 그냥 울면서 거래처로 간다. 물건을 팔고 울면서 “돈 주세요” 하면 수금도 잘된다.
중요한 건 감정을 유지해야만 문장이 기억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친구의 하루’라는 글을 쓰는 동안 많이 울었다. 울어야만 그 문장이 생각난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그 감정을 살릴 자신이 없다. 컴퓨터가 겁난다. 자판을 보고 첫 문장 쓰기가 막막하다. 메모를 보면서 겨우 감정을 살려본다. 그 감정이 내 글에 리듬을 부여한다. 글자가 아니라 감정에 글을 띄운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다.
11시가 넘으면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면서 글에 리듬이 사라지고 다시 건조한 글자가 될 조짐이 보인다. 악착같이 마무리를 하고 바로 페이스북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