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상시청문회 개최'가 규정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야권이 법안을 재가결·확정하거나 여권이 부결·폐기시키는 데 복잡한 셈법을 따져야 한다. 야권은 기본적으로 29표 이상의 여권표를 빼와야 하고, 여권은 최소 86명 이상의 '충신'을 확보하기 위해 표단속에 나서야 한다.
이는 박 대통령이 해당 법안을 20대 국회로 돌려보낸다는 가정에 따른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해외순방(25일~6월5일) 이후에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3일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4·13총선을 통해 배출된 20대 국회의원은 범야권 171명, 범여권 129명이다. 더불어민주당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및 야권성향 무소속 4석이 범야권을 형성한다. 대척점에는 새누리당 122석과 여당성향 무소속 7석이 있다.
다양한 재의결 시나리오 중 여야 의원 300명 전원이 표결에 참여하는 경우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야권 전체가 찬성표, 여권 전체가 반대표를 던지기로 각 당이 구속적 당론을 정한다면 법안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 범야권이 '출석의원 3분의 2'인 의결정족수 200명에 미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 여당 및 여당성향 무소속 의원들 가운데 29명이 이탈하면, 찬성 200표 대 반대 100표로 야권이 승리한다. 실제로 분당 위기 수준의 내홍을 겪는 상황을 볼 때 여권 비박계의 이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다만 이탈자 29명이 ‘기권’이 아닌 찬성표로 ‘분명한 배반’을 취해야 법안이 확정된다.
야권만 출석해 표결을 강행하는 시나리오도 고려할 수 있다. 야권은 의사정족수(151석)를 초과하는 의석을 갖고 있는 만큼, 여권이 배제된 본회의장에서 법안을 확정할 수 있다. 야권만 표결에 임하는 경우, 이탈표를 감안해도 114명의 확실한 찬성표만 확보하면 재가결에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이 경우 여권에서 반대표를 던질 의원들을 본회의장에 대거 출석시켜, 야권 전체의석수 이상으로 의결정족수를 올려버리면 방어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여권 충성파는 최소 86명이다. 86명 이상이 반대표를 행사하면 야권 전체의석 171석이 의결정족수에 미달해 법안이 부결된다.
물론 이는 법안 재의의 건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경우에 한한다. 원내 제2당인 새누리당의 의사일정 협의 거부 등 여러 정치적 변수가 발생한다면 본회의 상정 자체가 무산될 여지도 없지 않다. 87년 헌정체제 수립 이후 대통령이 거부한 법안 총 15개 가운데 재가결된 것은 단 1건이었고, 무려 8건은 재의에 부쳐지지도 못했다.
아울러 본회의 재의 단계까지 가더라도 재의의 경우 '무기명 투표'를 실시한다는 점에서, 여야 각각이 매직넘버를 쥐고 있다는 확신을 하기 어렵다. 국회법 112조5항 규정상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은 무기명 표결을 하기 때문에 여야 어느 쪽에서든 이탈자가 생길 수 있다.
물론 '살아움직이는' 정치의 특성상, 정치적 역풍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면서 이같은 도식을 벗어난 결과도 얼마든지 도출될 수도 있다.
국회 관계자는 "재의결 표결로 가는 것도 험난하겠지만, 표결단계에서도 여야 모두 긴장해야 하는 것은 똑같다"며 "여야의 매직넘버가 모두 여권 의원들을 겨냥한 것들인데, '지키는' 새누리당에 비해 남의 당 사람을 빼와야 하는 야당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