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임기 만료 7개월을 앞두고 방한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과 국민 대통합을 강조함에 따라 ‘대망론’이 더욱 무르익고 있다.
자신에게 가장 우호적인 새누리당 친박계와도 거리를 두는 고도의 차별화 전략으로 보인다.
반 총장은 26일 제주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향한 길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 관훈클럽 간담회에서도 “인도적 문제를 통해 물꼬를 터가며 대화하고 긴장을 완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제재·압박 일변도 정책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외교부는 반 총장 발언과 관련해 “(북한과) 대화를 위한 대화를 추진하진 않을 것”이라며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반 총장은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개인적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하고 싶다”고 말해 지난해 불발된 북한 방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전날 간담회에선 “남북간 대화채널을 유지해온 것은 제가 유일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그럴 만한 역량을 갖고 있음을 과시하려 했다.
반 총장은 한국 정치에 대해서도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비록 고국이긴 하지만 특정 국가에 대해 국제기구의 수장이 이런 언급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는 “남북으로 분단된 것도 큰 문제인데, 내부에서 여러 가지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고 이런 것이 해외에 가끔 보도되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 창피하게 느낄 때가 많다”며 국민통합 노력을 촉구했다.
그는 또 “이건 정치가 아니라 정쟁”이라면서 “누군가 대통합을 선언하고 나와 솔선수범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국가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얼핏 보면 정치권 전반을 지칭한 것 같지만, 최근 새누리당 내분 사태 등에 비춰 집권여당의 주류 친박계에 가장 큰 회초리를 든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박근혜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보다 불필요한 국론분열을 일으킨 정치적 이벤트가 많았다.
최근에만 하더라도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이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테러방지법 통과 등을 놓고 이념적 잣대까지 들이대며 국민들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놨다.
경제는 물론 안보까지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 결집을 통한 정국 주도권 장악이 주된 이유였다는 분석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반 총장은 의도성 여부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는 박근혜 정권의 핵심 정책과 운영 기조를 대놓고 비판한 셈이 된다.
이를 통해 반 총장은 국제 외교무대 경험은 많고 국내정치의 때는 덜 탄 자신이 통일과 화합의 최적임자임을 광고하는 부수적 효과도 챙겼다.
결국, 대권 후보군이 마땅찮은 친박은 반 총장에게 노골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반 총장이 이에 흔쾌히 응할지는 알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던 반 총장의 이후 행보에 친노진영이 배신감을 느꼈듯, 친박계라고 사정이 다를 것이란 보장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의도 정치권에선 반 총장이 친박계에 빚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친박에만 붙들려 있을 이유는 없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