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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편모충: 주원인은 남성인데 여성들이 고통받아"

책/학술

    "질편모충: 주원인은 남성인데 여성들이 고통받아"

    신간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지구의 2인자, 기생충 콘서트', 서민 지음

     

    질편모충: 성병으로 분류되는 기생충이며, 오직 사람만을 숙주로 삼는 기생충이다. 질편모충이라니, 이름도 참 성병스럽다. 성병으로 분류되는 것도 느낌이 안 좋은데, 이 기생충은 남녀 차별까지 한다. 남성의 몸에서는 환경이 별로 좋지 않아서 열흘도 못 견디지만, 여성의 몸에서는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살면서 고통을 준다. 게다가 에이즈 감염률까지 높인다니 흉악한 녀석이다. 감염의 주원인은 남성인데 자신들이 고통받으니 여성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도 하겠다.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에는 다 나름의 스토리를 갖춘 아주 짱짱한 기생충들이 나옵니다. 이것들이 나와서 한바탕, 가수들이 공연하는 것처럼 자기 장기를 뽐내고 들어가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콘서트’라는 말처럼 이 책을 잘 소개하는 말이 없는 것 같아서 이 제목으로 정하게 됐습니다
    . - 서민 교수, 인터뷰 중에서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가 과연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는지 몇몇 기생충에 대한 소개를 보자.

    머릿니: 맞다.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 그 ‘이’다. 그런데 그 머릿니가 아직도 유행하고 있다면 믿겨지는가? 놀랍게도 요즘도 많은 아이들의 머리에 머릿니가 들러붙어 있다고 한다. 퇴치가 쉽지 않은 이 골치 아픈 기생충의 유충(님프)은 다행히 40퍼센트 정도가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는다. 그런데 그 죽음의 이유에 어이없는 반전이 숨어 있다. 대부분의 기생충은 소식을 추구한다. 날씬한 몸매가 기생충의 특징 중 하나일 정도다. 그런데 머릿니 님프는 피를 너무 많이 먹다가 장이 터져서 죽는다. 우리 아이들의 머리 위에 기생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다니, 정말 얄미운 녀석이다.

    시모토아 엑시구아: 이 기생충은 물고기 혀의 피를 빨아 먹어 혀가 떨어져 나가게 해 놓곤 자신이 혀 노릇을 대신한다. 그것도 잠깐이 아니라 그 물고기가 죽을 때까지. 놀랍지 않은가? 그래서 저자는 시모토아 엑시구아를 ‘책임감의 상징’이라 칭하며 가장 착한 기생충으로 꼽는다. 시모토아 엑시구아는 자신이 기생하던 물고기가 죽으면 물고기 입을 빠져나와 죽은 물고기의 머리나 몸에 매달린다. 이 모습은 흡사 사람이 죽었을 때 옆에 매달려 “아이고, 아이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게다가 기생하던 물고기가 죽었다고 다른 물고기의 몸에 들어가지는 않는다고 하니 ‘의리의 아이콘’이 돼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구충: 구충은 인간의 피를 빨아 먹는 기생충계의 드라큘라다. 구충은 드라큘라 기생충답게 호랑이에 필적할 만한 멋진 이빨을 가지고 있다. (건치 기생충으로도 선정된 바 있다. 농담이다.) 그런데 왜 저자는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 기생충을 착한 기생충으로 선정했을까? 구충의 하루 혈액 섭취량은 0.15밀리리터도 안 되는 극소량으로, 피 한 방울도 안 된다. 잃는 것은 미미한 반면 구충의 쓰임새는 꽤나 유용하다. 현재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쓰이고 있는데다 항응고제로도 특허를 내고 개발 중에 있다. 이런저런 부작용이 있는 기존의 합성 항응고제에 비해 친환경적이라 연구·개발이 잘 된다면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 있으니 구충은 착한 기생충이 맞다.

    왜소조충: 기회감염성 병원체라는 게 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얼씬도 못하지만, 몸이 좀 약해지면 우르르 들어와 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를 뜻한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다니, 비겁하다고 욕하고 싶겠지만, 대부분의 병원체는 그런 속성이 있다. 사람 몸에 들어가긴 해야 하는데, 들어가려면 각종 방어막을 뚫어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 그런데 그런 방어막이 해제된 사람이 있다면 웬 떡이냐 하고 들어가지 않겠는가? 왜소조충도 이런 류의 기생충이다. 평소엔 온순하다가 숙주의 몸에 면역이 억제되면 유충들이 몸의 각 부분을 공격해 사망에 이르게 할 뿐 아니라, 갑자기 암세포로 돌변해 사람을 위협하기도 한다. 기생충이 암으로 변하다니, 변신도 적당한 수준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야말로 ‘안면 돌변 기생충’이라 하겠다.

    이 외에 인체 내에서 자가감염을 하며 수십 년을 생존하는 ‘분선충’, 잠복해 있는 동안 심장을 망가뜨려 20여 년 후 갑자기 사람을 죽게 만드는 ‘크루스파동편모충’, 고환을 이동시키는 ‘이전고환극구흡충’,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인간을 죽이는 무서운 킬러 ‘파울러자유아메바’ 등 흥미진진하고 독특하고 무서운 기생충들을 만날 수 있다.

    아마 인간은 멸종하더라도 기생충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더불어 살자 기생충’부터 ‘나 혼자 살자 기생충’까지 그들의 생존 방식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공통점은 있다. 바로 ‘자손 번식’이다. 그들은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살아왔다. 숙주를 돕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면서.

    책 속으로

    사람에게 기생하는 이는 머릿니 말고도 두 종류가 더 있다. 몸니(Pediculus)와 사면발니(Phthirus Pubis)가 그것인데, 사면발니는 형태학적으로 완전히 다르지만, 머릿니와 몸니는 얼핏 봐서는 구별이 잘 안 될 정도로 닮았다. 아마도 원래 같은 종이었는데 사람에게 건너오면서 일부는 머리를 택했고 일부는 몸을 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두 종을 같이 붙여 놓으면 서로 짝짓기도 하고 알도 낳을 수 있다는 점도 이 두 종이 완전히 다른 종이라고 하기 힘든 이유다. 그렇긴 해도 이 두 종의 운명은 너무도 달랐다. 처음 사람 몸으로 건너와서 서식지를 택할 때만 해도 몸을 택한 건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씻어도 문화인 대접을 받았던 과거, 몸니는 몸 전체를 오가며 마음껏 피를 빨았으리라. 우리나라에서도 40년 전만 해도 난롯가 옆에서 이를 잡아 터뜨리는 게 겨울에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런 몸니가 보기엔 머리에 들러붙어 숨어 사는 친척 머릿니가 답답해 보였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웬만한 사람들은 매일같이 샤워를 하고, 샤워가 끝난 후면 속옷을 새로 갈아입는다. 결국 몸니는 멸종의 길을 걸었고, 여전히 번창하는 머릿니를 부러워하고 있다.

    다리가 짧아서 슬픈 짐승, 머릿니의 전파는 머리와 머리가 아주 가까이 접근해야 가능하다. 소싯적에 가끔 하던 머리를 맞대고 밀어내는 시합은 머릿니가 전파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 밖에 빗을 같이 쓰거나 모자를 같이 쓰거나, 수건을 같이 써도 옮을 수 있다. 또 침대를 같이 쓰는 것도 머릿니가 옮겨 가는 한 방법이다. 어떤 분이 머릿니 관련 기사에 이런 댓글을 다셨다.
    “머리 매일 감고 밥만 잘 챙겨 먹어도 안 생겨.”
    샴푸로 머리를 자주 감는다고 머릿니가 예방되는 건 아니다. 심지어 빗질을 자주 하는 것도 그게 그냥 빗이라면, 머릿니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말이 나오겠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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