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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농민 10년의 데자뷰…대통령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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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진 농민 10년의 데자뷰…대통령은 달랐다

    [이 사람의 키워드] 사고 200일째 백남기氏에겐 '없는' 국가

    (사진=자료사진)

     

    #1.
    ▶ 2005년 11월-삐죽 솟은 장대가 횡으로 휘둘려 전경을 치면, 방패가 날아들어 농민을 가격했다. 성난 농민과 흥분한 전경들은 전쟁을 하듯 서울 여의도 바닥을 헤집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를 감싼 채 도로를 뒹굴거나 피범벅으로 실려가는 농민들은 늘어났다.
    ▶ 2015년 11월-경찰버스는 시위대를 가로막았고, 시위대를 그런 버스의 바퀴에 밧줄을 걸어 끌어당겼다. 시위대가 깃대와 사다리로 버스의 유리창을 때리면 그 위로 최루액 섞인 물대포가 쏟아졌다. 상대를 향해 날아드는 돌과 물대포가 종로 거리를 뒤덮었다.

    #2.
    ▶ 2005년 11월-여의도 집회에 참가했던 전용철 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지 8일만에 숨졌다. 두개골 골절, 출혈 등에 의해 사망이라는 게 국과수 부검 결과. 또다른 농민 홍덕표 씨도 패혈증을 일으켰고, 다음달 18일 끝내 숨을 거뒀다.

    ▶ 2015년 11월-종로 시위에 참여했던 농민 백남기 씨가 의식불명에 빠졌다. 경찰버스에 묶인 밧줄을 당기려다, 규정에 어기고 직사로 살수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것. 이때의 수압은 2500~2800rpm으로 성인남성을 내팽개치기에 충분했다.

    #3.
    ▶ 2005년 12월-두 농민의 사망이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왔고, 곧바로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책임자를 가려내 응분의 책임을 지우고, 피해자들에 대해 배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허준영 경찰청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 2015년 11월 이후-사고 200일째인 31일 현재 백남기 씨는 여전히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농성과 시위가 이어졌지만 책임을 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매우 안타깝다, 쾌유를 바란다"는 경찰청장의 국회 발언이 있었을 뿐이다.

    (사진=자료사진)

     

    2005년 농민집회와 2015년 민중총궐기, 10년의 시간차를 두고 열린 도심 집회에서 농민이 쓰러졌다.

    공통점은 경찰 진압 과정에서 쓰러진 농민이 목숨을 잃었거나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는 것.

    차이점은 전자에서 국가는 숨지 않았고, 후자에서 국가는 모습을 감췄다는 점이다.

    전용철 홍덕표 씨의 사망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를 대신해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반성문'을 읊었다.

    특히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과 다르게 특별히 무겁게 다뤄야 한다"면서 "이 점을 공직사회 모두에 다시 한번 명백히 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현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까지도 백남기 씨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고 있다.

    사고가 난 시위 상황을 두고 "불법 폭력 행위는 대한민국의 법치를 부정하고 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몰아붙였을 뿐이다.

    야당 대표 시절,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의 영전에 위로의 조화(弔花)라도 보냈던 박 대통령.

    10년이 지난 오늘 백남기 씨에겐 냉정하다 못해 눈을 감고만 있는 이유는 피해 정도가 덜하기 때문일까, 꼬투리 잡고 잡히는 입장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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