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 대신 학생들의 안전한 체육 활동을 위해 조성한 우레탄 트랙에서 납이 과다검출되면서 교육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중금속' 인조잔디를 학교에서 퇴출하기로 한 지 2년만에 '운동장 유해물질' 논란이 또다시 불거져 교육 당국의 허술한 학생건강관리 체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우레탄 트랙 전수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달여 더 남아있지만, 당국은 '손을 씻으라'는 허술한 대처만 내놓아 학부모들은 분통만 터트렸다.
◇ '푹신푹신' 좋다고 달린 학교 우레탄 트랙 '납 범벅' 교육부는 지난 3월 환경부의 학교 운동장 우레탄 트랙 중금속 실태조사 결과가 나오자 최근 전국 시·도교육청에 우레탄 트랙 유해물질(납) 조사를 지시했다.
환경부가 조사한 수도권 내 학교 운동장 트랙 25개 중 13개에서 한국산업표준(KS) 기준치 90mg/kg을 넘는 납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뒤늦은 조사결과 상당수 학교 운동장 트랙에서 기준치를 웃도는 납이 검출됐다.
전국에서 우레탄 트랙 설치학교가 399개로 가장 많은 경기도의 경우 1일 현재 조사가 완료된 236곳 중 148곳(63%)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납이 나왔다.
트랙 설치학교가 경기도 다음으로 많은 서울(312교)도 이날까지 조사가 완료된 학교 143교 중 50교(35%)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납이 검출됐다.
이밖에 지역별 우레탄 트랙 납 초과검출 현황은 원주, 동해, 삼척, 영월 등 강원 4개 시군에서 40교 중 26교(65%), 대전 26교, 세종 2교 등이다.
특히 경기도는 기준치 10배가 넘는 납이 나온 학교가 103교에 달했고 40배를 넘는 학교도 6곳이나 됐다.
강원 영월의 A고교 3천367㎎/㎏, 동해 B초등학교 3천237㎎/㎏, 삼척 C고교 2천757㎎/㎏ 대전의 D교 2천400㎎/㎏ 등에서도 기준치의 30∼40배에 달하는 납이 검출됐다.
전국 우레탄 트랙 설치교가 2천811교에 달해 전수조사결과 납 기준치를 초과한 트랙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교육부는 내달 중으로 전수조사 결과를 취합, 검토결과에 따라 우레탄 트랙 제거 및 운동장 설치 예산과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 '유해' 인조잔디 퇴출 얼마나 됐다고…납 KS기준 2011년 만들어져 학교 내 우레탄 트랙은 주로 흙 운동장을 인조잔디로 바꾸면서 설치된 경우가 많다. '학교 운동장 선진화 사업' 명목으로 한때 장려되는 분위기기도 했다.
부산에서만 이 사업이 진행된 2000∼2009년까지 인조잔디 운동장이 54곳 조성됐다.
2010년에서야 인조잔디 유해기준이 마련됐고, 뒤늦게 인조잔디에 과도한 양의 납과 카드뮴이 함유됐다는 지적이 일면서 잔디조성에 예산 일부를 지원한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 유해성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173교의 유해 인조잔디를 친환경 잔디 또는 흙 운동장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당시 우레탄 트랙에 대한 유해성 검증은 없었고, 2년여가 지나서야 환경부와 교육부가 뒤늦은 대응에 나선 것이다.
우레탄 트랙에서 납이 과도하게 검출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레탄 트랙 납 KS기준이 2011년 4월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안전기준이 까다로운 학교 운동장 공사라 하더라도 우레탄 납 기준이 없어 우레탄 물품별, 업체별 유해물질 함유량이 제각각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2011년 이후 설치한 우레탄 트랙에서도 KS기준을 넘는 납이 검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지역 교육청 관계자는 "KS기준이 마련된 2011년 이후부터는 우레탄 트랙 공사 준공시 유해물질 검사를 하기 때문에 그 이후 설치된 트랙에서도 납이 많이 나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부 전문가는 '설치 후 환경적 요인으로 납성분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달라진 납 검출 방식 때문에 납이 과도하게 검출된다는 의견도 있다.
대전시교육청 관계자는 "2013년 납 검출 방법이 '물질을 용액에 넣어 빠져나오는 성분을 검사하는 법'에서 '물질을 직접 녹여 검사하는 법'으로 바뀌었다"며 "유해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 것에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 "손 씻어라" 교육부 대응 '뭇매'…교체비용 확보 '난망' 운동장 트랙에서 과도한 양의 납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 3월 교육부는 각 지역교육청에 우레탄 트랙 사용 '행동요령'을 전파했다.
교육부가 마련한 행동요령은 '트랙 위 앉지 않기, 손씻기, 우레탄 트랙 파손 부위 접촉 금지' 등이 전부였다.
납 검출 실태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데다 교육부도 소극적인 대처에 그치자 학부모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경기지역 초등 학부모는 "납 위험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어느 학교에서 얼마나 검출됐는지 조차 알 수 없어 답답하다"며 "하루빨리 학부모와 학생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서울과 경기 등 일부 시·도교육청은 기준치가 넘는 납이 검출된 학교에 대해선 즉각 사용금지 하도록 했으나, 언제까지 운동장 사용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기 용인의 한 학교 교사는 "트랙이 교체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그때까지 운동장 사용을 금지하는 것도 교육과정상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유해 우레탄 트랙을 교체하는 데 드는 비용 확보도 쉽지 않아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트랙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평균적으로 학교 한곳당 트랙 교체비용이 평균 1억원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국 우레탄 트랙 2천811교 중 절반만 교체한다 해도 1천억원이 넘는 예산이 필요하다는 셈이 나온다.
당국은 교육부 예산과 지역교육청, 지자체 등의 예산을 끌어모아 교체비용을 충당한다는 계획이지만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충북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체에 돈이 많이 드는 게 큰 걱정인데, 시·도교육청이 재원을 분담하라고 한다면 재정 형편상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의당 정진후 전 의원은 "부처별로 예산 핑계 대며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학생 안전에 관한 문제에 있어선 신속하게 예산을 편성,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