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 구조조정 여파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금융권이 건설, 철강 업체들에 대한 기업여신 모니터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 업종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이 오는 7월 '2016년 대기업(신용공여액 500억 원 이상 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금융권에서는 이들 업종에 대한 여신 관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6일 금융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다음달 '2016년 상반기 대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때 C등급(워크아웃)과 D등급(법정관리)에 이름을 올린 기업들은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지난해 말 대기업 신용위험평가에서는 C등급 11개사, D등급 8개사 등 총 19개사가 구조조정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총 54개사가 워크아웃 또는 법정관리 대상이 돼 금융위기 영향을 받았던 2010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당시 업종별로는 건설이 14개로 가장 많았고, 철강이 11개, 전자 8개, 조선 4개 순이었다.
오는 7월에 상반기 신용위험평가 결과가 발표된다. 금융권에서는 이번에도 건설과 철강 업종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될 것으로 내다봤다.
◇ "무리한 경기부양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특히 금융권에서는 건설사 리스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부임하면서 강제로 끌어올려놓은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에 따른 후폭풍에 대한 우려에서다.
최 부총리는 지난 2014년 8월 취임과 함께 부동산 금융 관련 규제인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를 단행했다. 아울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잇따라 내리는 게 큰 역할을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부동산 경기 활성화 불씨를 살리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다. 그 결과 부동산 거래는 살아나기 시작했고, 매매가는 상승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시장에서는 이런 정부의 정책으로 건설사들이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건설사의 국내 연간 주택공급은 30만~40만 세대 수준인데, 지난해(2015년) 이례적으로 49만 세대까지 늘어났었다.
조선업이 문제가 된 것이 공급과잉에 따른 것인데 건설업도 이런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저금리와 대출에 의해 수명을 연장해 왔는데 이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급이 넘치면 경쟁이 치열해진다. 그 결과 시장에서는 저가수주와 밀어내기 분양이 반복된다.
금융권에서는 건설업에 2017년 말이나 2018년 초에 1차 충격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주택가격은 더이상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공급이 소비보다 많아지면 가치가 급락하는 것이 시장의 논리이고 분양가보다 시세가 떨어지면 입주가 안되는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 건설 여신에 몸사리는 '금융권'조선·해운 기업 여신으로 홍역을 앓은 일부 시중은행은 건설업체에 대한 여신 리스크 모니터를 대폭 강화했다. 특히 건설사 신규분양을 위해 동원되는 집단 대출에는 사실상 응하지 않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은행 대출담당 한 관계자는 "이전이면 통과됐을 조건도 지금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집단대출이란 신규 아파트를 분양할 때 차주 개인의 상환능력에 대한 심사 없이 중도금과 잔금 등을 빌려주는 은행 대출상품이다. 선분양 제도라는 한국 주택시장의 특수성이 반영된 제도로 흔히 아파트 중도금 대출로도 불린다.
◇ 집단대출 금리 소폭 인상…비중은 폭증실제 한국주택협회가 최근 협회 회원사 18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월 이후 중도금 집단대출 규제 대상이던 사업장 대부분이 대출금리를 0.7%p~1.4%p 가량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액 중 집단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4년만 해도 2.5%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12.5%까지 치솟았다. 부동산 금융규제 완화와 금리 인하 여파로 신규 분양 물량이 봇물 터지듯 넘쳐난데 따른 것이다. '밀어내기' 논란을 일으킬 만큼 신규 분양이 쏠렸던 지난해 4분기에는 집단대출 비중이 29.6%로 상승했다.
한국주택협회 측은 "금융당국이 조치를 취하면서 지난 4월 이후 집단대출 거부사례는 감소하고 있지만 2.8% 대에서 체결되던 대출금리(2015년 10월 기준)가 3.2~4.2%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 철강 산업도 '긴장'건설과 함께 대표적인 공급과잉 업종으로 꼽히는 것이 '철강'산업이다. 이 때문에 구조조정 대상으로 건설 다음으로 철강 산업이 꼽히고 있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철강 산업이 업체 간 경쟁이 심해 제살깍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전체가 만성적인 공급과잉 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경쟁하다보니 수익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철강업계도 이러한 위기감을 인식하고 자발적인 구조조정에 무게 중심을 두고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업황이 개선되고 있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굵직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어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내실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철강업계는 최근 구조조정 관련 연구 용역 보고서를 작성할 업체로 보스턴 컨설팅 그룹을 선정하고 구조조정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조선·해운의 경우 기관산업이어서 금융당국의 강요에 굴복해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지원해왔지만, 건설과 철강 등은 이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며 "기업 여신에 대해 면밀한 모니터를 실시중이며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금융권 내달 신용위험평가 발표가 도화선다음 구조조정 타깃이 건설, 철강 업계가 될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금융당국은 "정부 차원에서 진행할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조선·해운과 같은 기관산업과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내놓는 주채무계열평가와 신용위험평가에 대한 발표가 구조조정의 도화선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달 주채무계열평가를 마치고 이달 중 공개할 예정이다. 주채무계열 관리제도는 주채권은행이 주요 대기업그룹의 재무구조를 매년 평가하고 재무상태가 악화된 그룹과 별도 약정을 맺어 재무구조 개선을 유도하는 제도다.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은 그룹은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과 같이 채무 상황이 유예되는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재무구조 개선 방안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재무구조 악화로 부실 징후를 보인 대기업 그룹 3~4곳이 이달 중 새로 채권은행의 중점 관리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달 발표될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에도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실질적인 구조조정 대상 명단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사라질 것이고, 업체 간 전략적 합병도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정부가 나서 구조조정을 강제로 이끌 계획은 없지만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