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변호한 홍성우 변호사 "용감한 폭로"…권인숙씨는 교수 활동경찰, 제도 개선으로 가혹행위 차단…인권단체 "인권수준 아직 미약""권양,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인가?"(부천 성고문사건 변론요지서)
30년 전인 1986년 6월 6일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함께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대표적 인권탄압 사건으로 꼽히는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사건 이틀 전 서울대 의류학과에 다니다 경기 부천시의 한 의류공장에 위장취업했던 권인숙(당시 22세) 씨는 공문서위조 등 혐의로 부천경찰서에 연행됐다.
권씨는 가명으로 위장취업했음을 모두 인정했지만, 형사 문귀동은 위장취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5·3 인천사태 주동자의 행방을 캐물었다.
취조실에서는 폭행과 욕설이 난무했다. 급기야 권씨는 문귀동으로부터 변태적인 성고문까지 당했다. 등 뒤로 수갑이 채워져 저항도 할 수 없었다.
한동안 수치심에 몸서리를 치던 권씨는 이 사건을 그냥 덮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수사기관 밀실에서 벌어지는 공권력의 추악한 범죄에 의한 피해자가 더는 나오면 안 된다고 여겼다.
권씨의 폭로로 사건이 알려졌지만 당시 정부는 이를 숨기거나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폭언·폭행은 있었으나 성 모욕행위는 없었다"는 수사 결과 발표가 나왔다. 정부는 보도지침까지 만들어 언론을 압박했고, 검찰뿐 아니라 법원마저 권씨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결국, 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쟁취한 1988년 검찰이 불기소한 사건에 대한 재정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고, 조영황 변호사가 최초의 특별검사격인 '공소유지담당 변호사'로 임명됐다. 결국 문귀동은 유죄가 인정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인권변호사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고(故)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권씨를 변호한 홍성우 변호사는 그때 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홍 변호사는 6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당시 '권양'을 면회하면서 사건의 전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기억난다"며 "그전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독재정권의 만행을 전해 듣고 변호인단은 놀라 말을 잃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전신인 '정법회' 소속으로 20명의 공동 변호인단이 꾸려졌다.
홍 변호사는 "'권양'이 20대 여성으로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일을 용감하게 폭로했다. 고발 의지를 밝힌 시점부터 끝까지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며 "변호인으로서도 경찰과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고조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의욕적으로 상대했다"고 전했다.
그는 "군사독재를 바꾸자는 저항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서 '6월 항쟁'의 촉매제가 된 사건이었다"며 "이를 계기로 여성인권에 대한 각성도 높아지고 개선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홍 변호사와 함께 변호에 참여한 이상수 변호사(전 노동부 장관)도 "정권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힌 결정적인 사건이며 6월 항쟁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내가 처음 제보를 받아 권양을 만나러 가서 알게 됐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권양이 단호히 정권의 부도덕한 측면을 얘기한 것"이라며 "본인이 딱부러지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수사기관 등이 꼼짝할 수 없었다. 권양같은 용기 있는 사람이 폭로해 사회에 알려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권씨는 이후 미국 유학을 다녀와 여성학자로서 자신의 경험과 이론을 결합해 활발한 강의와 외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4년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성폭력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연구소 '울림' 초대 소장도 맡아 1년간 활동했고, 현재는 강의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30년간 경찰도 많이 변했다. 고문 등 가혹행위 발생을 원천 차단하는 환경 개선도 이뤄졌다. 수사부서 폐쇄회로(CC)TV 설치, 진술녹화실 마련 등이 그 결과물이다.
2005년부터는 경찰청 훈령으로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직무규칙'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이 규칙에는 '경찰관은 직무수행 전 과정에서 폭행·가혹 행위를 포함해 신체에 대한 부당한 침해 또는 위협을 가하거나 이를 교사 또는 방조해서는 안 된다', '경찰관은 직무수행 중 폭언, 강압적인 어투, 비하하는 언어를 사용하거나 모욕감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청문감사관실 신고, 담당 수사관 교체 요청 등을 할 수 있고,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여전히 수사기관의 인권 수준이 미약하다고 지적한다.
수사 과정의 고문 등 가혹행위도 아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0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피의자의 입에 휴지를 물리고 뒤로 수갑을 채운 채 팔을 위로 올리는 '날개 꺾기' 고문이 자행됐고, 2014년에도 진술녹화실 CCTV를 끈 채 피의자를 폭행한 경찰관이 적발됐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현재 수사기관의 인권 수준이 높아졌다고 볼 근거가 없다"면서 " "수사기관의 수사기법이 고문과 어떻게 다른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고 나아가 수사 과정을 변호인 등에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