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정부 '실리'·한은 '명분'…자본확충펀드의 손익계산서

경제정책

    정부 '실리'·한은 '명분'…자본확충펀드의 손익계산서

    출자여지 열어둔 건 논란의 소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구조조정 추진현황 및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의 윤곽이 8일 드러났다.

    정부는 국회를 우회하는 방법으로 조선과 해운의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또 한은은 정부가 요구한 출자 대신 펀드조성을 통한 대출방식으로 참여함으로써 ‘손실 최소화’라는 중앙은행의 원칙을 관철했다.

    정부가 실리를 얻었다면 한은은 명분을 지킨 셈이다.

    그러나 한은이 비록 출자에는 응하지 않았지만 비상시도 아닌 상황에서 기업 구조조정에 발권력을 동원하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점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 있다.

    ◇ 실리 얻은 정부

    이날 발표한 국책은행자금확충방안의 가장 큰 의미는 위기 시가 아닌 평시에 구조조정 지원을 위해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구조조정은 정부가 할 역할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공적자금은 재정의 몫이다.

    그러나 정부는 구조조정이 시급하고,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한은에 발권력 동원을 요구했다. 정부가 추정한 구조조정 소요자금은 5~8조원.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그 규모가 얼마나 커질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일례로 외환위기 때 IMF가 추정한 부실채권 규모는 24조원에 불과했지만 실제로는 300조원 가까이로 불어났다. 부실 채권을 추정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운 작업이다.

    정부는 충분한 규모의 자금을 조달한다며 12조원을 조성했고 그 대부분인 10조원을 한은의 몫으로 돌렸다. 정부가 구조조정 자금을 한은에 요구하면서 내세운 논리는 재정으로 할 경우 국회의 심의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이로 인해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내막에는 국회를 거칠 경우 부딪쳐야 하는 부실의 책임문제가 있다.

    정부로서는 최상의 시나리오인 출자는 무산됐지만 한은을 이용해 국회를 우회하는 핵심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 명분 지킨 한은

    한은은 구조조정의 긴박함을 내세워 발권력 동원을 압박하는 정부에 협조하면서도 중앙은행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은 고수했다.

    한은은 정부가 강력히 요구한 수출입은행 출자에는 응하지 않았다. 출자의 경우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하고, 또 자본금도 감자 등을 통해 손실을 볼 수 있다. 이는 발권력은 최후의 수단으로 엄격히 제한돼야 하고, 부득이 하게 발권력을 동원할 경우에도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중앙은행 원칙과 배치되는 것이다.

    대신 발권력으로 지원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대출방식을 관철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2009년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시중은행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던 자본확충펀드 방식을 준용했다.

    특히 손실최소화를 위해 지급보증을 세웠고, 채권 변제순위도 정부가 지원한 자금보다 우선으로 했다. 지난 2009년의 경우에도 펀드에 넣은 자금 80% 정도가 회수됐고, 채권을 정부보다 우선순위에 둔 덕분에 한은은 빌려준 돈 전액을 회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기시도 아닌 평시에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발권력 동원의 선례를 남긴 것은 한은으로서는 뼈아픈 것이다.

    ◇ 논란의 불씨

    출자 가능성을 열어둔 점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발표문에는 "시장 불안이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경우 정부와 한은은 수은 출자를 포함해 금융안정을 위한 다양한 정책수단을 강구한다"고 명시했다.

    한은은 금융안정에 책임이 있는 만큼 금융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최후의 대부자'로서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대처해야 하고, 이는 한은의 고유한 임무다. 그런데 최종 대부자로서의 한은 역할을 굳이 발표문에 명시하면서 '출자', 그것도 '수출입은행 출자'라는 문구를 삽입한 것은 그 배경을 두고 많은 추측을 낳고 있다.

    한은 통화정책국 김봉기팀장은 "금융안정의 책임이 있는 중앙은행으로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최후의 대부자로서 당연한 역할이지만 출자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시장에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구조조정 추진과정에서 부실규모가 커지고 추가로 자금이 필요할 경우 한은에 출자를 요구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구 해석을 놓고 정부와 한은 간에 논란을 벌일 가능성도 크다. 어디까지를 시스템 리스크로 볼지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