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한국가스공사 발주 ‘액화천연가스(LNG) 저장탱크 건설공사 담합 사건’ 처리 과정에서 두산중공업에 면죄부를 줘 보이지 않은 손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공정위 전원회의가 담당 심사부서에서 작성한 '심사 보고서'를 뒤집는 이례적인 의결을 해 결국 두산중공업은 수백억원의 과징금 감면혜택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8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재계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은 지난 2014년 5월 ‘LNG 저장탱크 건설공사 입찰 담합' 사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최초로 자진신고했다.
과징금 전액을 면제해 주는 혜택을 받기 위해서인데,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공정거래법)’에는 담합 사실을 최초 자진신고한 업체는 과징금 전액을, 두번째 업체는 50%를 감면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자진신고자 감면(리니언시) 제도’다.
지난해 4월 A사가 2순위로, 같은달 B사가 3순위로 모든 담합 행위에 대해 자진신고를 하자,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7월 말쯤 나머지 5건에 대해서도 자진신고를 했다.
그런데 심사부서인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은 지난해 11월 요건 미비를 이유로 두산중공업의 1순위 자진신고자 지위를 취소하고 이를 통보했다.
공정거래법 35조에 따르면, 부당한 공동행위(담합)와 관련된 사실을 ‘모두’ 진술하고 조사가 끝날 때까지 성실하게 협조할 것을 명시하고 있는데 두산중공업이 이를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실제 두산중공업은 담합한 전체 12건의 입찰에서 당초 7건만 자진신고했고, 자진 신고 사실을 다른 건설업체에게 귀띔해 줘 담합 행위 조사를 방해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2순위 자진신고자인 A사를 1순위 자진신고자로, 3순위 자진신고자인 B사를 2순위 자진신고자로 각각 인정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지난 4월 20일 전원회의에서 담당 심사부서인 카르텔조사국이 약 1년 6개월 간의 조사 끝에 내린 두산중공업의 ‘1순위 지위 취소’ 결정을 다시 뒤집어 논란이 일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일부’ 자진신고와 신고 사실 ‘누설’, 그리고 ‘누설’에 따른 다른 건설사들의 장기간에 걸친 ‘은폐’를 조장했다는 의혹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전원회의에서 핵심적인 내용이 바뀌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당시 전원회의에서는 2시간에 걸쳐 격론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심사보고서 내용이 미미하게 바뀌는 경우는 많지만,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크게 바뀌는 경우는 소수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 (전원회의)는 심사관이 올린 것을 다시 판단하는 기관이다. 심사관은 최종적인 결정기관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현재 공정위 전원회의 최종 의결서는 완성단계이며, 이달 중순쯤 관련 업체들에 전달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중공업은 1순위 지위가 취소될 경우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하지만, 전원회의에서 자격이 그대로 유지돼 '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과징금 100% 감면 및 검찰 고발 면제 혜택을 받게 됐다.
재계에서는 이와 관련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최종 의결서를 송부받아야 확인할 수 있는데 아직 의결서를 받지 못해서 이 건에 대해서 언급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한국가스공사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통영·평택·삼척에 LNG 저장탱크를 짓는 3조 2269억원 규모의 건설공사 12건을 발주했고, 공정위는 지난 4월, 13개 담합 건설사에 대해 총 35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