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5위의 롯데그룹이 사정당국의 강도 높은 비자금 수사로 창사 70여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이 혼란의 와중에도 신동주·동빈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오히려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당장 이달 말 한·일 롯데의 지주회사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총수 자리를 놓고 다시 표 대결이 펼쳐질 예정인 데다, 이후에도 비자금 수사로 타격을 입은 신동빈 회장에 대한 형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거센 공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12일 롯데그룹 등에 따르면 이달 말 일본 도쿄 롯데홀딩스 본사에서는 정기 주주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 주총에 앞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이미 지난달 동생 신동빈 롯데 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사장을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해임하는 안건을 주총에 상정해달라고 롯데홀딩스에 공식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안건 상장 여부는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 결정되는데, 거부할 명분과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만큼 정식 안건으로 채택돼 주총 당일 표 대결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두 차례의 주총 표 대결에서는 모두 신동빈 회장이 압승했다.
작년 8월 홀딩스 임시 주총에서 신동빈 회장이 제안한 '사외이사 선임' 건, '법과 원칙에 따르는 경영에 관한 방침' 건이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5분 만에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다.
올해 3월 6일 주총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제기한 자신의 이사 복귀와 신동빈 회장·다카유키 사장 이사 해임 건이 30분 만에 모두 부결됐다.
특히 신동주 전 부회장은 3월 주총을 앞두고 승패를 좌우할 종업원 지주회(지분 27.8%)에 "홀딩스 상장을 전제로 지주회원 1인당 25억 원 상당의 지분을 배분하고 개인이 팔 수 있게 해주겠다"는 파격 제안까지 내놓았지만, 결국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신동빈 회장과 호텔롯데·롯데면세점·롯데마트 등 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비자금, 면세점 입점 로비, 가습기 살균제 인명피해 등으로 동시에 수사를 받는 등 큰 위기에 직면한 만큼,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격이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되는 분위기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10일 롯데 본사와 계열사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발 빠르게 성명을 내고 "창업 이후 최대 위기 상황이라는 중대성에 비춰 정기 주총에 앞서 롯데홀딩스 및 종업원 지주회에 경영정상화를 위한 긴급협의의 장을 설치하길 요구한다"며 주총 표 대결을 겨냥한 '판 흔들기'를 시작했다.
지난 8일 일본에서 서울로 건너온 신 전 부회장은 9일 열이 나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서울대병원(종로구 연건동) 입원에 동행했고, 12일 현재까지 병원을 오가며 신 총괄회장 곁을 지키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아버지의 후계자'라는 이미지 부각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신동빈 회장의 롯데그룹 측은 비리 의혹과 수사에도 불구, 지난해 7월 이후 한·일 롯데를 모두 장악한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 자체가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거듭된 수사 소식에 그룹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은 사실이지만, 종업원 지주회 등 롯데홀딩스 주요 주주들이 동요하는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도 "이번 롯데 사태는 오너 일가 전체의 문제로도 볼 수 있는데 신동주 전 부회장이라고 완전히 예외일 수 있겠느냐"면서 "후계구도가 바뀌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7일 출국해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 총회에 대한스키협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회의가 끝난 뒤 신 회장은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석유화학 업체 액시올(Axiall)사와 합작한 법인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건설하는 에탄크래커 공장 기공식 등에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에 돌아오는 대로 신 회장은 비자금 수사 등 관련 상황을 자세히 보고받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이달 말 곧바로 이어지는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 전략까지 고심해야하는 처지가 됐다.
롯데 관계자는 "아직 신 회장의 출장 일정에 변동은 없다"며 "다음 주에도 미국 등에서의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있는 만큼 예정대로라면 일러야 다음 주말 또는 다음다음 주에나 귀국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