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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의 연극 저널리즘

    [노컷 리뷰] 김재엽,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

    검열에 저항하는 젊은 연극인들의 페스티벌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진행 중입니다. 6월부터 시작해 5개월간 매주 1편씩, 총 20편의 연극이 무대에 오릅니다. CBS노컷뉴스는 연극을 관람한 시민들의 리뷰를 통해, 좁게는 정부의 연극 '검열'부터, 넓게는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뿌리박힌 모든 '검열'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연극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 中. (사진= 가림토, 드림플레이테제21 제공)

     

    자궁으로서의 국가란 얼마나 낭만적인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동체의 이념과 개인의 윤리가 통합적 일체를 이루는 세계는 자궁처럼 한없이 따뜻할 것 같다. 생의 긴장이 해소되지 않고 배고픔과 불안, 사회적 위험이 점차 생존을 위협하는 세상이 올수록 우리는 몸을 안전히 보호해주던 출생 이전의 생활을 더욱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을 다시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대상을 열망하며 우리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강건한 공동체적 신체에 기대고 싶다.

    김재엽의 연극은 그러한 통합의 세계에 ‘애착’을 갖는 국가 운영자들을 자궁 밖의 무대로 불러내어 ‘인간’의 예술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한 상상적 공간에서 주장한 ‘통합’의 언어들이 자궁이라는 내부의 ‘반향실(echo chamber)’에서 벗어나 외부의 상징적 세계와 대면했을 때 어떤 분열과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를 샅샅이 밝혀낸다. 예술 검열을 부인하거나 옹호하는 다양한 프레임의 진술들은 자신들의 국가적 공공성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기모순을 폭로하기도 한다.

    연극의 구성은 흥미롭다. 극성을 가진 사회적 현실을 하나의 텍스트로 놓고 관객들과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식이다. 마치 JTBC 뉴스룸의 ‘팩트체크’의 코너와도 같이, 배우들은 실제 사실과 추정의 언어를 구분해가면서, 검열 언어의 진실에 접근해간다. JTBC 뉴스에 나온 문화예술위원회의 국정감사를 재현하면서도, 배우들은 관객에게 사실적 증언극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순간 그들의 캐릭터에 몰입하다가 빠져나온다. 그리고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도무지 안 되거나 비논리적 언술이 소화가 안 되는 순간, 그 상황에 대해 코멘터리하며 유머러스한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다.

    연극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 中. (사진= 가림토, 드림플레이테제21 제공)

     

    국가가 순수예술을 지원하면서 특정 작품을 문제 삼고 일부 지원자들에게(박근형,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외) 작품 포기를 종용한 상황에 있어 관객들에게 사회적 의제를 던져주는 방식이다. 중간중간 서사화 수단으로서의 자막과 인터뷰 영상, 기사 자료 등이 등장하여 관객들은 극의 흐름을 중단하면서 연출가와 배우들이 던지는 토론거리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공연 중간에 삽입한 영상에서 한 배우는 이렇게 말한다. 연극인들에게도 매체 저널리즘 비평에 대한 메타적인 비평이 필요하다고. 그는 논란이 되는 지점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연극계도 적극적으로 담론을 형성해서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논의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품의 평가는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인데, 특정 언론매체에서 바라보는 국가 시책에 대한 친화적 입장이 보편적 사실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논란과 가십에 가려져 작품의 고유성과 사회적 ‘쟁점’을 호도하는 경우가 있다면, 창작자로서 이에 분명한 목소리로 대응해야 한다.

    연극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 中. (사진= 가림토, 드림플레이테제21 제공)

     

    공연 중에 천명되는 국립극단의 연극선언문처럼 오늘날 우리 연극이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빚어낸 질문들에 대답하고 되묻는 예술적 실천”이라면, 기존의 저널들이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국가적 ‘설문’이 아닌 새로운 선택지로서의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은 모든 창작자가 추구해야 할 존엄한 의무인 것이다. 김재엽의 연극은 주류 매체에 의해 획일화된 ‘검열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찍어내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연극 저널리즘’의 형식을 제안하고 있다.

    이 연극은 보편적 심미성과 예술적 공공성의 조건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를 묻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공공성이 국가주의에 기반하는 ‘안보 미학’으로 성립될 것이냐, 민주주의적 절차로 혁신되는 ‘예술 미학’으로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를 흥미롭게도 지난 18대 대선의 지지율 프레임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체 국민을 현재의 정부를 지지하는 51%여의 국민들과 지지하지 않았던 49%의 국민들로 나누는 태도, 즉 집단적 일체감에 공헌하는 통합의 국민과 공공적 일체성을 훼손하는 편향적 국민, 두 개의 부류로 나누는 국가의 자세야말로 지극히 현실정치적 계산에 근거하는 정치적 태도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립극단은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검열각하’께 진상하는 공무원들의 연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모든 국민은 너무 불쌍’할 것이다.

    연극 '검열언어의 정치학 : 두 개의 국민' 中. (사진= 가림토, 드림플레이테제21 제공)

     

    이 공연의 59 대 49론을 보며, 오래 전 영화 <넘버 3="">에 나온 대사가 떠올랐다. “너, 대통령이 되려면 몇 프로 얻으면 되는지 알아? 50.1프로만 얻으면 끝나. 나머진 깨끗이 찌그러지는 거야. 깨끗이… 그게 세상 이치지. 아직 감이 안 잡히니? 임마, 누군가를 51프로 믿는다는 건, 100프로 믿는다는 뜻이야. 49프로 믿는다는 건, 절대 안 믿는다는 뜻이야. 난 세상에서 너만을 믿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이 대사는 삼류 조폭 논리로서는 근사하지만, 건강한 시민사회의 논리로 사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가 예술은 100% 믿을 수 있는 51%를 향한 고착적 예술이 아닌, 다른 편의 49%와 함께 섞이는 예술을 향해야 한다. 국가의 일부 구성원들이 지나치게 가치가 부여된 어떤 단일성으로 융합되지 않았을 때, 국가는 공공성이란 명목으로 그 내용을 함부로 통합할 것이 아니라 그 민주적 다양성을 지켜나가는 공공성의 형식을 먼저 취하여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다양성의 예술이야말로 보편적으로 안전하게 지켜야 할 예술적 가치인 것이다.

    검열의 언어가 지금과 같이 문화예술인들에게 박해적 불안을 주게 된다면, 연극인들은 불쾌한 긴장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 더 공연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당장은 주춤하더라도, 매번 그리되어왔다. 그리하여 비로소 자궁 밖에 나와 있는 ‘인간’이 되어, 퇴행적 고착 언어가 아닌 온전한 상징 언어를 통해 관객들과 만나지 않겠는가. 예술의 ‘권리장전’이란 그런 과정 속에서 탄생되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의 예술사 속에서 실증해온 보편예술의 예외 없는 법칙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노지영(문학평론가).{RELNEWS: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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