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강남구청 관할 지역에 있는 공사현장에 대형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사진=김구연 기자)
"더 이상 대응하지 않겠습니다."강남구청이 '불통'을 선언했습니다. 민간 업체를 상대로 기부를 강요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지 나흘 만입니다.
CBS노컷뉴스 취재기자가 강남구청의 '선의'를 '악의'적으로 왜곡해 보도했다는 게 취재 불응의 이유입니다. 하지만 "어떤 부분을 왜곡했느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속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강남구청은 끊임없이 '순수한 의도'를 강조합니다. 순수한 의도로 태극기 관련 행사를 안내하고 기부를 권유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공사 감독권 등을 가진 공무원이 은밀하게 건넨 쪽지를 받은 민간 건설 관련업체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굳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구나 구청의 안내로 태극기 제작업체에 송금된 돈의 행방은 오리무중입니다. 구청도 민간 업체도 모릅니다. 심지어 태극기 제작업체는 구청으로부터 안내받은 업체의 기부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여전히 의혹이 산더미입니다. 언제부터 민간 업체를 상대로 기부를 은밀하게 권유해왔는지, 얼마나 많은 업체에 권유했는지, 얼마나 자주 권유했는지, 태극기 제작업체와 어떤 관계인지, 왜 이런 은밀한 권유를 했는지 등 따져 물어야 할 게 태산입니다.
내놓은 해명 중에는 오히려 궁금증을 자아내는 해명도 있습니다. 가령, '공무원의 이런 권유행위가 적절했냐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강남구청은 "다수는 부담을 느끼지 않았는데, 일부가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고만 답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도 아니거니와 어떻게 다수 업체들은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업체들을 상대로 입막음을 시도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강남구청의 불통에 구의회도 한숨짓습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지난 10월부터 구의회에 참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의회 의장과의 마찰 때문이다', '강남구청 댓글부대 사건 때문이다' 등 설은 많지만, 정작 강남구청 공보팀장은 "나도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여선웅 강남구의원은 강남구청을 상대로 '부서별(주민센터) 태극기 관리 현황'에 관한 정보를 청구했지만, 사실상 못받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여 의원은 지난 3월부터 신 구청장 일본출장 관련한 정보를 세 차례나 청구했지만 이 역시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여 의원은 "아직도 신 구청장이 어느 호텔에서 묵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며 답답해했습니다.
극진한 태극기 사랑을 몸소 실천해온 강남구청의 민낯을 취재하다 문득 테헤란로를 수놓은 태극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면서 설명할 수 없는 뭉클함과 함께 씁쓸함이 밀려왔습니다.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에게도, 비공개할 이유가 전혀 없는 정보를 청구하는 구의원에게도 불통으로 답하는 구청이 얼마나 구민들과 소통할지 의문입니다. 불통으로 일관하는 강남구청은 어느새 꽉 막힌 '강남구청 공화국'이 돼 버린 듯합니다.
의혹에 대해 적극 해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공개할 수 있는 정보는 당당히 공개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사과할 부분이 있다면,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시길 바랍니다. 강남구청은 "좋은 취지로 태극기 관련 행사를 안내하고 권유했는데, 일부는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럼 그 부담을 느낀 일부를 위해 사과하는 건 어떠신지요?
취재 뒷이야기를 덧붙이자면, 강남구청 공보실장이 본 기자의 기사에 문제가 있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이의신청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그 협박을 매우 환영합니다. 아니면 언론중재위원회가 아니라 경찰이나 검찰에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를 하는 것은 어떨까요? 수사기관의 수사를 통해 보다 많은 진실이 드러날 수만 있다면, 저 역시 당당히 수사를 받고 법정에도 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