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아닌 협력, 주입이 아닌 토론, 배제가 아닌 배려의 정신을 실천하는 혁신학교는 경기도에서 시작돼 이미 전국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정작 경기도에서는 이재정 교육감 취임 이후 누리과정 등 여러 정치 쟁점들에 밀려 퇴보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CBS노컷뉴스는 취임 2년을 맞고 있는 이 교육감이 그동안 추진해온 혁신교육정책이 학교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혁신공감학교? 몰라요…" 이재정 號 2년, 말로만 '혁신?'
② 시켜서 하는 혁신…무늬만 혁신학교?
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수원의 한 혁신공감학교, 김모(46·여) 교사는 얼마 전 교장으로부터 황당한 단체 메시지를 받았다.
'앞으로 건의사항이 있더라도 건건이 교장실로 찾아오지 말 것.'
지난해까지 5년 동안 혁신학교에서 근무한 김 교사가 혁신부장에게 공개수업 방식을 바꿔보자고 제안한 것이 화근이 됐다.
김 교사의 제안은 부장단 회의를 거쳐 교장에게 보고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일로 김 씨는 소위 '찍힌 교사'가 됐다.
"공개수업 방식은 교사들마다 다 다를 텐데, 모든 선생님들이 연구부장이 만든 양식에 따라 짜맞추기식 수업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교장이 정하면 바꿀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예요."
이후에도 김 교사는 동료 교사들에게 학습모임을 제안했다가 퇴짜를 맞기도 했다.
"'저 선생님은 왜 자꾸 일을 만들려고 하지?' 이런 분위기예요.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 너무나 쉬워진…시켜서 하는 '혁신'경기도에 혁신학교가 뿌리 내린 지 7년. 전체 학교의 96.9%가 혁신(공감)학교가 되면서 '혁신'은 일반화, 보편화 됐다.
문제는 '혁신'이 이젠 너무나 쉬워졌다는 것.
그동안 혁신학교 교사들이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만들고, 수업을 바꿔나가기 위해 몇 년씩 토론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거쳤던 치열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3년 동안 혁신학교에 있다 지난해부터 혁신공감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모(48) 교사는 "혁신학교에서는 1박 2일 캠프 가는 걸 결정하더라도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모든 교사들이 회의를 하고 협의한다"며 "학교를 옮기고 나서 처음에는 모둠식 토론도 제안해보고 했지만 '귀찮은 걸 왜하냐'는 반응들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혁신 과제들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몇몇 교사들이 수행하고, 성과보고서를 잘 써서 내면 되는 것들이다.
그러다보니 거꾸로 관리자들이 교사들에게 '혁신'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가장 비혁신적인 '명령'으로.
고양시 한 혁신공감학교 교사 정모(38) 씨는 "학교평가에도 반영되니까 이제는 교장 교감들이 교육청에서 내려 보낸 혁신 과제들을 교사들한테 시킨다"며 "교육청 역점 사업이니 무조건 수업 바꿔라 공개수업해라 공동체 만들어라는 식이어서 교사들의 자발성은 더욱더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 '무늬만 혁신학교'…모델 이식만으론 한계경기도교육청 역시 지난해부터 학교 민주주의 지수를 개발해 보급하는 등 학교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관리자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리더십 연수를 진행하고, '토론이 있는 교무회의' 등과 같은 각종 제도나 프로그램들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청 주도의, 위에서부터 아래로 진행되는 사업 구조의 한계 지점은 분명하다.
한 4년차 혁신학교 교사는 "교육청에서 내려보내는 공문만으로는 학교를 변화시킬 수 없다"며 "공문대로 보고서만 써서 올려주고, 학교에서는 예전에 하던 방식 그대로 다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경기교육청의 혁신공감학교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자발성을 끌어낼 수 있는 보다 실질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홍익대 교육학과 이윤미 교수는 "혁신학교를 견인력은 교사들에게 있는데, 학교 내부에서 교사들이 실질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무늬만 혁신학교'가 될 수 있다"며 "학교 내부 조건들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혁신 모델을 이식하는 방식이 되면 그동안 혁신학교들이 가져왔던 긍정적인 의미들이 퇴색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