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스페인, 어쩌면 당신도 마주칠 수 있는 순간들 79'는 여행작가 김영주가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느낀 단상의 기록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어느 날 나는 여행이 싫어졌다.”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의 로망인 여행이 싫어졌다니? 심지어 이렇게도 말한다.
“가 본 적도 없는 곳을 멋대로 상상하며 여정을 짜는 게 무모해 보였다. 온갖 물품들을 작은 캐리어 속에 모조리 쑤셔 넣는 과정은 설렘을 퇴색시킬 만큼 귀찮은 일이 되었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맞춰 일당백의 옷가지를 골라내고 플라스틱 용기에 화장품을 담아내는 것도 전혀 즐겁지 않았다. 목적지까지의 이동은 회를 거듭할수록 피곤해졌고, 시차의 후유증은 여전히 극복되지 않는 걸림돌이 되었다. 숙소를 옮길 때마다 엉거주춤 짐을 풀고 다시 싸야 하는 것, 땀과 (때로는) 비에 젖은 셔츠를 연일 입어야 하는 것, 낯선 환경 속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는 것, 밤마다 다리를 주무르며 저질 체력을 비관하는 것, 어쩌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조차 갈 수 없는 신세가 되는 것, 나는 이 모두가 죽도록 싫어졌다.” (서문 중에서)
그렇지. 한 번이라도 집을 떠난 사람이라면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여행은 익숙한 것으로부터 떠남이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말도 있듯, 떠나는 순간 이미 고생은 시작된다. 여행 중 맞닥뜨리는 많은 불편함들. 그래서 김영주는 그 모든 고생스러움이 ‘죽도록 싫어졌다’고 말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꿈꾼다. 그래서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두고, 낯익은 내 살림살이와 편안한 내 집을 두고 온갖 도구들을 쑤셔 넣은 가방을 들고 가슴 설레며 ‘내 집’을 나선다. 김영주도 다시 떠났다. 왜냐하면 ‘다시 여행이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내 육체가 직접 맞닥뜨렸던 달곰쌉쌀한 기억들이 튀어나와 속을 뒤집어 놨다. 불편했던 경험마저 어느새 애잔한 추억으로 변해 있었다. 상상의 여행은 상상하는 만큼 더 큰 빈자리를 남겨놨고, 한껏 늘어진 육체는 생각마저 무뎌지게 했다. 무한대로 뻗어나갈 수 있는 정신적 이동은 오히려 긴장감이 떨어지면서 한계에 부딪쳤다. 나는 진짜 공간, 진짜 순간들이 필요했다. 잔잔한 일상에 파문을 일으킬 생생한 자극을 원했다. 감동과 난관과 우연과 생경함으로 뒤범벅이 된 현장, 그 팔딱거리는 세상 속으로 또 한 번 들어가고 싶어졌다.” (서문 중에서)
그래서 여행작가 김영주는 다시 짐을 꾸려 떠났다. 이번에 떠난 곳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안달루시아 지방. 여행을 떠나기 전 교통과 숙소, 유명 박물관 및 미술관 예약은 기본. 그러나 이번에 그녀는 최소한의 것만 예약하고 무작정 떠났다. 그곳에서 맞닥뜨릴 ‘순간들’을 기대하며. 그리고 김영주는 ‘여행의 순간들’을 그녀만의 순간들로 포착해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안달루시아 지방을 여행한다면 마주칠 순간들, 뿐만 아니라 그 어디든 여행을 하는 동안이라면 마주칠 순간들. 그래서 스페인 여행기인 '스페인, 어쩌면 당신도 마주칠 수 있는 순간들 79'를 읽다 보면 스페인은 물론, 스페인이 아니어도 어디론가 떠나 그 순간들과 맞닥뜨리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