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물고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어민들은 이제 빈 그물을 걷어올리기는 게 일상이 되다시피했다.
우리 국민의 밥상에 자주 오르던 주요 생선들은 어획량이 급감,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지구온난화의 영향도 있지만 너무 많이, 그리고 미처 자랄 새도 없이 작은 물고기까지 마구 잡는 남획이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 명태 자취 감춰…정어리·쥐치도 사라질 위기 1950년 이후 어종별 어획량 추이를 보면 연근해에서 어떤 물고기가 얼마나 줄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어선 대형화와 새로운 어법과 어구의 개발이 급속하게 이뤄진 1970~80년대에 어획량이 가장 많았던 시기와 비교하면 주요 어종 대부분이 60%이상 줄었다.
명태는 1981년 16만5천여t이 잡혔으나 1993년 1만t 미만으로 줄었고, 2008년에는 전혀 잡히지 않아 '사라진 어종'이 됐다.
이후 치어방류 등 자원량 회복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나 연간 어획량은 1~3t에 불과하다.
쥐치는 90% 이상 줄어 고갈 상태에 놓였다.
1986년 32만7천여t이나 잡혔지만 2014년에는 2천423t, 지난해에는 2천40t에 불과했다.
정어리도 1987년 19만4천여t에서 2014년 335t, 지난해 2천900여t으로 99%나 줄어 '사라진 어종'이 될 위기에 처했다.
최근 20년간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병어 역시 1975년 2만4천100여t에서 지난해 3천300여t으로 8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갈치는 16만6천여t이 잡힌 1974년과 지난해(4만1천여t)를 비교하면 75.3% 어획량이 줄었다.
까나리(91.2%), 강달이(91.0%), 갯장어(85.8%), 대구(78.5%), 전어(66.1%), 붕장어(57.7%), 참조기(43.9%) 등 주요 어종 대부분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획량이 줄었다.
◇ 30년간 어획량 70만t 줄고 주력 어종에도 변화 이처럼 주요 어종이 자취를 감추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이면서 전체 어획량도 큰 폭으로 줄고 있다.
1950년 21만6천여t이던 연근해 전체 어획량은 1970년대부터 가파른 증가세를 보여 1973년(106만1천여t)에 처음으로 100만t을 넘었고, 1987년에 172만5천여t으로 최고를 기록했다.
이후 조금씩 줄어 80년대에는 연평균 152만t, 90년대에는 137만t, 2000년대에는 115만t으로 떨어졌다.
2013년에는 104만t으로 80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105만8천t으로 조금 늘었다.
주로 잡히는 어종에도 큰 변화가 왔다.
70~80년대에는 쥐치, 정어리, 갈치, 명태 등이 주종을 이뤘다. 이 시기에는 쥐치와 명태 두 어종만 합쳐도 어획량이 40만t에 달했다.
최근에는 멸치, 오징어, 고등어로 바뀌었다. 2014년을 기준으로 이 3개 어종을 합친 어획량은 약 51만t으로 전체의 47%를 차지했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바다 저층에 살던 어종에서 중간과 표층 가까이 사는 어종으로 주 어획 대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 어획강도 높아지고 어장 축소…자라기도 전에 경쟁적으로 "잡고 보자" 수산과학원의 한 관계자는 연근해 어자원이 고갈 위기를 맞은 것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어장 변화도 영향을 미쳤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남획이라고 지적했다.
수산과학원이 연근해 자원 상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04년 이후 어선 감척 등으로 어획 강도가 이전보다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적정수준을 1로 봤을 때 어획강도는 1.6에 이른다. 반면 자원량은 0.5로 적정수준의 절반밖에 안 된다.
연근해 어선 수는 2000년에 6만8천629척으로 최대를 기록한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2013년에는 4만7천493척으로 줄었다.
하지만 어선의 성능을 나타내는 척당 마력수는 1990년 평균 64마력에서 2013년에는 217마력으로 2.4배나 증가했다.
그만큼 한번에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어로장비의 기계화와 현대화도 어획강도를 높였다.
쌍끌이 저인망 어선의 경우 90년대 초에는 그물 높이가 10m 안팎이었지만 90년 중반부터 50m로 커졌다. 참조기를 주로 잡는 근해 유자망 어선의 그물폭도 90년대 초에 비해 50%이상 커졌다.
연안어선들도 대형화하면서 생계형에서 벗어나 기업형으로 변화해 근해까지 진출하는 등 어획강도 증가를 심화시켰다.
어선수가 늘고 규모가 대형화한 상태에서 한일, 한중 어업협정으로 우리 어선이 조업할 수 있는 어장은 90년대 초 86만4천여㎢에서 2014년에는 72만8천여㎢로 16% 줄어들었다.
어장을 잃은 근해어선들은 연안으로 조업지를 옮기고, 반대로 연안어선들은 근해로 진출하면서 업종간 경쟁은 더욱 심해졌다.
경쟁은 '무조건 많이 잡고 보자'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채 자라지 않은 어린 고기까지 마구 잡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것이 어자원 감소로 이어진 가장 큰 요인이라고 수산과학원 관계자는 진단했다.
어린 물고기가 자라서 산란해 재생산으로 이어질 기회조차 없애는 이런 남획은 어자원을 감소시킬 수밖에 없다.
갈치를 예로 보면 머리에서 항문까지 길이가 18cm이하인 어린 개체의 비율이 안강망은 73.1%, 대형선망은 18.2%에 달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어시장에서 씨알이 굵은 생선을 찾아보기가 아주 어려워졌다.
출어경비라도 건지려고 작은 개체들까지 잡다보니 위판 물량 상당수가 양식어장 사료용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예전에는 상품가치가 없다고 쳐다보지도 않던 작은 생선들도 이제는 위판장에 오르고 있다.
조기의 경우 예전에는 6단 크기(상자 바닥에 몇마리가 들어가는지를 기준으로 크기를 재는 단위)까지만 위판했으나 요즘은 10단짜리까지 등장했다.
이런 상태에서 중국어선들이 우리 연안으로 몰려와 불법으로 싹쓸이 조업을 하면서 가뜩이나 줄어든 물고기의 씨까지 말리고 있다.
◇강도높은 대책 필요…"어업인도 인식 바꿔야"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연근해 주요 어종이 대부분 사라질지 모른다"며 더 늦기 전에 강도높은 대책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수산과학원 관계자는 "70년대에 어획강도가 높은 트롤어업이 도입되고 어선 척수 증가와 대형화, 새로운 어구의 개발이 이어지면서 어획량이 급증했는데 그때 자원감소에 대비하지 못한 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어획강도를 지금보다 확 낮춰야만 어자원을 유지할 수 있다"며 "어선 성능이 예정보다 엄청나게 좋아졌기 때문에 찔끔 감축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금어기를 새로 설정하거나 조정하고 어린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포획금지 체장을 정하는 등 자원 보호에 나서고 있지만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양수산부는 올해 5월부터 갈치, 고등어, 말쥐치, 옥돔, 대구 등의 금어기를 신설하고 낙지의 금어기를 산란시기에 맞춰 조정했다.
또 갈치, 고등어, 참조기 등의 포획금지 체장 규정을 신설하고 민꽃게는 강화했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는 정부가 정한 금어기가 해당 어종의 산란기에 비해 너무 짧다고 지적했다.
어업인들도 이제는 경쟁적으로 먼저 잡고 보자는 조업 방식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어업환경을 만드는데 동참해야 한다고 전문가는 물론 어업인들조차 지적하고 있다.
수산과학원 관계자는 "바다는 국가와 국민 모두의 소중한 자산임에도 우리 어업인들 사이에는 주인 없는 곳, 심지어는 자신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며 "이 때문에 남보다 먼저 잡는 게 임자라는 식의 마구잡이 조업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부터 최장 80일간의 자율 휴어를 시행하는 대형기선저인망수협의 정연송 조합장도 "이제 어업인들이 자살골을 넣어야 할 때"라며 "산란기 조업을 자제하고 치어 방류 등을 통해 어업인 스스로 어자원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에 대한 정부의 더욱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대형선망 조합 관계자는 "우리 어업인들만 노력해서는 소용이 없다"며 "불법 조업으로 적발한 중국 어선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강한 처벌을 하는 등 우리 바다의 어자원을 지키기 위한 정부 차원의 엄정한 대응도 필요하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