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대 국회 때 새누리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 A씨는 의원실이 주최한 세미나 직후 보좌진 2명을 해고했다.
행사장에서 태극기를 똑바로 설치하지 않았다고 보좌진을 크게 질책한 뒤 내려진 조치였다.
이에 새누리당 보좌진협의회 측이 문제 삼으려하자 해당 보좌진의 누적된 실책 때문이라는 해명이 나왔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었다.
같은 당의 중진 의원 B씨는 보좌진을 자주 바꾸기로 유명하다.
2~3개월에 한 번씩 보좌진을 교체하는데 지난 19대 때는 무려 20명이 해당 의원실을 거쳐갔다.
올해로 13년 경력의 한 보좌관은 의원회관에서 해고 통보는 '일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야, 나가 하면 바로 내일 면직 처리되는 게 우리 보좌진"이라면서 "그런 사례가 셀 수도 없다"고 말했다.
◇ 전화 불친절, 차량 색깔도 트집…해고 사유도 가지각색
여야는 최근 불거진 친인척 보좌진 채용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너나없이 '특권 내려놓기' 홍보에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30일 국회의원 세비를 동결하기로 하는 한편 친인척의 보좌진 채용도 엄격히 제한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선 여전히 의원들의 '갑질'이 횡행하고 있다.
전화를 친절하게 받지 않았다거나, 심지어 차량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례도 있다.
최근 모 의원 비서관을 그만 둔 C씨는 "채용 공고가 자주 나오는 의원실은 그만큼 사람이 자주 바뀐다는 뜻"이라며 "자신도 그 사례 중 하나"라고 푸념했다.
그는 "일을 그만 둔 지 얼마되지 않아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다"면서도 "해고 사례가 저 말고도 꽤 많다"고 말했다.
터무니 없이 비인격적인 대우를 하거나 극히 개인적인 용무까지 심부름 시키는 경우도 있다.
명문대 법대를 나와 옛 민주당 의원의 수행 비서로 일했던 한 D씨는 '모시던' 의원이 "명문대 나와서 내 운전기사한다"고 사람들 앞에서 여러 차례 망신을 주는 바람에 사표를 냈다.
경력 15년의 한 보좌관은 "애완견 개집 청소까지 시키는 의원도 있었다"며 "사람을 너무 함부로 다뤄서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요주의 인물로 꼽혔다"고 전했다.
◇ 보좌진에 미리 해고 통보하도록 한 법안은 묵히다 '자동폐기'
국회의원은 4급 보좌관 2명과 5급 비서관 2명, 6·7·9급 각 1명에 인턴 2명 등 최대 9명의 보좌진을 채용할 수 있다.
해고할 때는 별다른 사유가 없더라도 의원이 일방적으로 면직 요청서를 작성해 국회 사무처에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고용주'의 횡포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직업 안정성이 낮기 때문에 보좌진의 연대와 공동 대응 필요성이 제기되긴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이고 뚜렷한 개성을 가진 의원들을 충실히 보필해야 하는 입장에선 자기 주장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한 보좌관은 "의원회관은 300개(의석수)의 중소기업이 모여있는 중소기업 단지와 같다"며 "모두 다른 사정이 있다보니 문제가 터졌을 때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좌관도 "갑질과 잘못된 제도, 관행이 이어져도 어느 의원의 비서관, 보좌관이라는 직함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못 내는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 19대 국회에선 해고 사실을 미리 통보해주는 보좌관 면직 예고제 법안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관영 의원 대표발의로 제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의원들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 뒤에서 그림자 인생을 사는 보좌진들은 갑을 종속관계를 넘어 당당한 입법 파트너로 인정받기를 희망한다.
한 보좌관은 "임기를 최소 1~2년 보장하는 보좌진 임기제도도 추진됐지만 모두 무산됐다. 선뜻 나서주는 의원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원들이 '특권 내려놓기'를 말하기에 앞서 바로 옆에 있는 보좌진부터 챙기는 인식의 전환이 우선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