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야심 차게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했지만, 노동계는 정부 방침에 반발을 넘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대형 3사 정규직 "수주 절벽이라더니 도움도 안 될 지원에서 열외… 황당하다"
"이틀 전만 해도 난리 날 것처럼 얘기해놓고… 어처구니없다는 말씀 말고는 드릴 얘기도 없습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김태정 정책국장은 "대형 3사에 자구안을 내라고 압박해서 분사에 희망퇴직, 임금 삭감 등 할 수 있는 협조를 다 했다"며 "이제 와서 지원할 필요도 없을 만큼 경영 상태가 좋다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헛웃음만 지었다.
정부는 전날인 지난달 30일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면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대형 3사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부가 내건 4가지 지원 열외 이유를 요약하면 수주 물량이 남아 경영 상태가 양호하므로 주로 인력조정이 일어나는 협력업체 노동자를 우선 지원하겠다는 주장이다.
이런 지원 열외 소식에 대형 3사 노조는 분노 이전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대우조선해양노조 조현우 정책기획실장은 "금융위는 수주 절벽이라며 인력 감축하라는데 노동부는 말이 다르니 둘 중 하나는 거짓말하는 것"이라며 "노조를 압박해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려는 의도든, 돈도 안 주고 해고하려는 거짓말이든 둘 중 하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동안 노동계는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구조조정으로 실업만 양산한다고 주장해왔다. 노동부 스스로 인정하듯 대형 3사가 최소한 다음 해 상반기까지의 물량을 수주한 마당에 대규모 인력감축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물론 해양플랜트 프로젝트 실패 등의 부담으로 체질개선이 요구되는 상황이 분명하지만, 이미 정부와 채권단의 압박으로 대형 3사 모두 각각 1천여명씩 퇴직하는 등 자구노력을 기울였는데 더 이상의 압박은 억울하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정부는 지원대상에서 제외하면서 하반기까지 파업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놨지만, 정작 지원 범위에 포함돼도 3사 정규직은 별다른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한 정부 관계자는 "빅3 대기업까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상황까지 가겠나"라며 "실업급여의 경우에도 정규직은 인력을 감축할 때 대부분 희망퇴직 형태로 자발적 퇴직해 회사를 떠나기 때문에 어차피 지원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정부 "파업하면 2차 지정서도 제외"… 노조 "7월 파업으로 화답하겠다"
이런 가운데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은 "3사 노조가 파업하면 국민들에 대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질 것"이라며 "투쟁은 일자리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정규직 노조를 공격했다.
3사 노조의 파업 쟁의가 지원 열외의 원인이 있다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하반기에 2차 지원대상을 지정하기 전에 노조가 파업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셈이다.
하지만 단단히 뿔이 난 노조는 오히려 정부의 '지원 열외'에 하투(夏鬪)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조선 3사 노조 가운데 가장 강성으로 꼽히는 현대중공업 노조는 이날 현대자동차 노조와 23년 만의 공동파업을 선언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물론, 8개 조선업체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조선업종노조연대는 다음 달 공동파업 일정을 조율하며 총파업 카드를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 하청노동자마저… "하청구조 모르는 탁상행정" 일침
"한마디로 헛소리입니다. 하청구조 자체가 어떤지 파악을 못 하고 있어요"
현대중공업 하창민 하청노동지회장은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이) 이득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들지 않는다"며 "오히려 그동안의 물량팀 불안정 노동을 합법화하고, 파견법 개정 빌미로 삼으려는 의도로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핵심지원대상으로 꼽은 하청 비정규직마저도 정부 대책이 무용지물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지원책을 크게 둘로 나누면, 고용유지지원금 등을 하청업체에 지원해 고용을 유지하고, 실업자가 발생하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새 일자리를 얻도록 돕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원청 대기업이 내리는 물량을 처리하고 기성(도급비) 받기 급급한 영세 하청업체로서는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을 아무리 늘린들 단돈 100원이라도 인건비를 지급하며 업체를 운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현장 노동자들의 일관된 설명이다.
하 지회장은 "전국적으로 물량팀 등 하청노동자가 조선소에 얼마나 분포됐나 조사조차 안 됐다"며 "원청업체를 통해 금방 확인할 수 있는데도 무작정 대책만 내놓으니 황당할 뿐"이라고 혀를 찼다.
재취업 대책 역시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다. 4, 50대 조선업 기술자들은 제조업 현장에서 손꼽는 숙련인력으로, 맨땅에서 세계 1위 조선업을 일군 베테랑들이다.
하 지회장은 "용접이면 어디든 가서 용접하면 된다는 식의, 기계적으로 이해한 결과"라며 "수입부터 일의 특성까지 고려해보면, 돈 몇 푼에 조선소 기술자들이 일자리를 쉽게 옮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원청업체가 하청에 하청을 거듭해 아낀 인건비로 수십조 규모의 이익을 남겼으면 지금과 같은 위기에서 책임져야 할 것 아니냐"며 "근본적으로 원청이 노동자를 책임지게 하는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