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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재난보다 더 오싹한 '터널'의 대한민국

    [노컷 리뷰] 삼풍백화점부터 세월호까지…'터널'이 소환한 기억들

    ※ 스포일러 주의

    (사진=영화 '터널' 스틸컷)

     

    배우 하정우의 짜임새 있는 생존기. 영화 '터널'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긴장감과 재미를 자아낸다.

    그러나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터널'이 풍자하는 모든 지점이다. '잘 협의하라'는 말만 던진 채 사진찍기에 여념없는 국민안전처 장관, 장관 눈치보기에 바쁜 공무원들, 그리고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금전적 피해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무너진 터널 속에 갇힌 평범한 가장 정수(하정우 분)가 구조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영화는 예기치 못한 조난을 당한 정수가 터널에서 '어떻게' 생존하느냐에만 머물지 않는다. 터널 밖에서 조난 사고를 직면한 외부 시선들이 촘촘하게 얽혀 들어간다.

    생사를 담보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정수는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을 견뎌낸다. 그를 가장 위협하는 건 물의 고갈도, 체력 저하도 아닌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불안감이다.

    밖에서는 정수의 구조를 두고 치열하게 찬반 양론이 갈린다. 발파가 남은 제 2 터널 공사가 지연돼서 금전적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 사람들은 첫 구조 실패로 인해 길어진 구조 시간으로 정수의 생존 확률이 지극히 희박하다고 판단한다.

    실패 원인은 너무도 허무하다. 터널 공사할 때부터 엉터리인 설계도가 정수가 조난된 위치에 대한 착오를 일으키게 한 것이다.

    구조 현장에서 발생한 불의의 사망 사고 역시 여론을 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수의 구조를 바라는 가족은 그 순간부터 이기적인 인간들이라며 손가락질 받는다.

    결국 정수 가족에게 했던 '반드시 구하겠다'는 정부 측의 다짐은 하루에 15억 씩 금전적 손해를 보고 있다는 제 2 터널 공사 재개 동의서로 돌아온다. '국민들이 지쳤다'고 이야기하는 공무원을 통해 생명이 걸린 문제에 피로감을 느끼는 비인간적인 정서가 발톱을 드러낸다.

    (사진=영화 '터널' 스틸컷)

     

    붕괴된 터널 안에 한 인간이 생존해 있을 수도 있다는 기적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기자, 정치인, 일반인 할 것 없이 정수의 사건은 마치 하나의 흥미로운 이벤트로 소비되고 끝나버린다.

    무사귀환을 장담하던 구조 시스템은 알고보니 허점투성이다. 특정한 사람을 탓할 수 없을 정도로 전반적인 시스템이 그렇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모두가 책임을 회피한다.

    정의나 정직 같은 가치보다 개개인의 이익이 우선시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살아간다. 그럼에도 그런 방식에 저항하지 않고, 이 사회를 살아가는 '나'라는 구성원에 무기력과 분노를 느낀다.

    기시감이 들면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몇 가지 대형 재난 사고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멀게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가깝게는 세월호 침몰 사고까지 지켜보며 느꼈던 감정들이다.

    오싹한 가정이지만 만약 이것이 정수는 하염없이 구조를 기다리다가 죽어갔을지도 모른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알고도 막을 수 없었던 수많은 불행들처럼.

    다행히 '터널'은 영화다. 그러니까 '기적'의 중심에 구조대장 대경(오달수 분)이 존재한다. 끝까지 정수의 구조를 포기하지 않은 대경은 결국 정수가 보내는 생존 신호를 포착하고 아슬아슬하게 구조에 성공한다.

    기자의 바람대로 최장 기록을 깨고 생존한 정수는 세상을 향해 짧고 굵게 욕 한 마디를 날린다. 강렬한 정우의 첫 발언은 외부의 모든 병폐를 지켜 본 관객들에게 잠시나마 통쾌한 해소감을 준다. 정수에게 말 한 마디 걸어보지 못하고 떠나는 장관의 어리둥절한 뒷모습은 반성 없는 정치권의 '웃픈'(웃기면서 슬픈)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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