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NEW 제공)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이라는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한 영화 '부산행'과 '서울역'을 잇달아 선보이는 연상호 감독이,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는 성우들의 현실에 대한 의미 있는 증언을 했다.
올해 첫 천만영화에 이름을 올린 부산행의 프리퀄(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로 주목받는 서울역.
지난 10일 열린 서울역의 언론시사회·기자간담회에는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과 목소리 연기를 한 배우 류승룡, 심은경, 이준이 참석해 영화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날 소개된 작품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목소리 연기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사이비' '돼지의 왕' 등 다수의 애니메이션으로 관객과 소통해 온 연 감독은 작품이 완성되기 전에 더빙을 한 뒤, 그에 맞춰 입 모양 등 그림 작업을 완료하는 선녹음을 선호한다.
이에 대해 그는 "선녹음을 통해 배우들의 좀 더 자유롭고 이질적인 연기와 결합되면서 영화가 보다 독특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배우 류승룡은 "지금까지 애니메이션 더빙을 네 작품 정도 했는데, 그때는 그림을 보면서 목소리를 맞추는 것이어서 하면서도 어색한 점이 있었다"며 "(이번에 선녹음을 하면서) 애니메이션이라는 갑옷을 입고 조금 더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심은경은 "간단한 콘티가 그려진 화면을 보고 연기를 하면서 입 모양을 맞춰야 한다는 부담을 덜고 캐릭터의 감정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고, 이준 역시 "싱크를 맞출 필요가 없어서 연기를 하는데 편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연 감독은 취재진으로부터 '전문 성우를 쓰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서울역' 이전 작품들에서도 실사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캐스팅해 왔다.
연 감독은 "선녹음을 하는 데는 미리 녹음을 한다는 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제 입장에서는 전작 '사이비'에 출연한 양익준, 오정세라는 배우가 어떤 식으로 연기를 하는지 잘 알기에 그런 분들의 연기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이어 "제 작품의 사이 사이를 채우기 위해 연기를 하는 아티스트의 연기법 등에 기댈 필요가 있다"며 "어떤 배우의 어떤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캐스팅할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물론 전문 성우를 캐스팅할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성우분들에 대한 정보를 제가 많이 알지 못한다"며 "성우를 캐스팅하는 데 힘든 부분이다. 어떤 톤 앤 매너를 지닌 성우를 캐스팅할 때 정보가 배우들보다 적다"고 강조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1960~80년대 전성기를 보낸 성우들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방송사들이 제작비 감축을 위해 프로그램에 자막을 입히기 시작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후 2000년대 중반 밤 시간대 예능 프로그램들이 활성화 되고, 외화가 점차 설 자리를 잃은 채 심야 시간대로 밀려나면서 자연스레 성우들이 설 자리는 줄어들었다.
더욱이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스타들의 내래이션 참여가 급격히 늘고, 개그맨·아이돌이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빙을 맡는 것이 흔한 풍경이 되면서 그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연 감독은 "서울역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제가 제작을 맡은 애니메이션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의 경우 성우들이 선녹음을 담당했다"면서도 "성우들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는데, (성우들에 대한 정보가 없다보니) 엄청나게 지난한 과정이었다. (캐릭터와) 비슷한 톤 앤 매너를 찾아내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