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정진석 원내대표 (사진= 윤창원 기자)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보수정당 사상 첫 호남 출신 대표로 업무를 시작한 지난 10일, 이 날은 정진석 원내대표의 취임 100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취임 100일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은 따로 열리지 않았다. 직전에 원내대표직을 수행한 원유철 의원이 취임 100일 간담회에서 "신박으로 불러달라"며 그간의 행보를 자평한 것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정 원내대표는 대신 새 지도부 출범 후 열린 첫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의(義)는 충(忠)으로부터 나오고 충(忠)은 백성을 향한다"라는 글귀를 회의실 백보드에 적는 것으로 취임 100일 '행사'를 갈음했다.
◇ 1일vs100일 정진석과 이정현 온도차 '극명'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이자 호남 출신 이정현 대표의 1일에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지난 11일 신임 지도부와 청와대 오찬 회동 직후 정부는 전기료 누진제 개선책을 발표하는 등 청와대 역시 이 대표에게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이 대표가 3선, 정 원내대표가 4선으로 당초 선수가 낮은 이 대표가 정 원내대표에게 밀리는 모양새가 연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친박계의 압도적 지지와 청와대의 전폭적 지원 속에 힘의 균형추는 이정현 대표에게 쏠리는 모양새다.
여기에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당 지도체제가 바뀌면서 당 대표 권한이 강화된 것도 이 대표를 돋보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평가다.
최고위 '합의'가 원칙이던 당직 인사가 '협의' 수준으로 바뀌면서 당 대표에게 인사 전권이 부여됐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당분간 현행 체제를 유지하면서 사무총장과 지명직 최고위원 등 후속 인선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 '만세' 부른 원내대표…원내 협상 중심으로 출구 전략 구상100일 동안 친박과 비박 사이 이른바 '낀박'으로 아슬아슬한 '중앙선 정치'를 보여준 정 원내대표는 당분간 이정현 대표의 뒤에서 원내 현안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 10일 최고위원회 회의가 끝나고 회의실을 빠져나오면서 "홀가분하다"며 만세를 불러 취재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평소때와 달리 기자들이 따라오며 회의 내용을 캐묻지 않은 데 대한 변화를 애둘러 표현한 것이지만, 총선 참패 이후 사실상 당 대표 역할을 해 왔던 부담감에서 벗어난 데 따른 기쁨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정 원내대표는 이정현 대표가 당 최고 정점으로 급부상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외연을 넓히기보다는 대야 협상 등 원내 문제에 주력하는 엑시트(Exit ), 즉 출구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다.
원내대표실 관계자는 "이정현 대표와 투톱 체제 속에서 당분간 원내 협상을 원만히 이끌어가며 이 대표를 받쳐주는 등 공조 체제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이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건의한 누진제 개편도 정 원내대표가 반대 의사를 피력하는 최고위원들의 의견을 적극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원내대표는 전당대회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출된 당 대표와 함께 환상의 찰떡 공조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현재는 힘의 균형추가 이정현 대표에게 쏠리는 모양새지만, 상황에 따라서 정 원내대표가 다시 국정 전면에 나설 수도 있다.
정 원내대표는 "야당이 민생의 손목과 발목을 잡고 있다"며 추가경정예산 처리를 압박한 끝에 지난 12일 여야 3당 원내대표들간 회동에서 추경 처리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따라서 오는 9월 예정된 국정감사를 비롯해 정책과 법안 처리 등 원내 협상에서 원내대표 역할이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2008년 당시 홍준표 원내대표가 쌀소득보전직불금 부정수령 사건을 터뜨리며 정국을 주도한 바 있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직불금 파문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사회악 척결에 앞장서면서 개혁적 이미지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