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중 네 번째로 발표한 8.15경축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경축사 중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는 단 한 문장만 할애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발표했으나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앞서 한일 외교장관은 지난 12일 전화통화에서 지난해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에 따라 “국내 절차가 완료되는 대로 예산 10억엔을 신속하게 출연하기로 결정했다”고 외교부는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의 8.15경축사에서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의 후속조치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전망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이 위안부 협상을 타결하자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이뤄낸 결과”라고 자평했다.
이어 올해 1월 대국민담화에서는 “위안부 문제는 역대 정부에서 한 번도 제대로 다루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었다며 “최대한 성의를 갖고 최상의 어떤 것을 받아내 제대로 합의가 이뤄지도록 노력한 점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역대 정부가 손도 못대던 것을 박근혜정부가 해결했으니 예산 10억엔 출연 등 뒤이은 조치에 대해서도 자화자찬이 있을 법 하지만 경축사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경축사에서 이 문제를 건너 뛴 것은 무엇보다 한일 합의는 물론이고 예산 10억엔 출연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들이 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 할 말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주 10억엔 출연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한일 양국 정부에서는 이 자금의 성격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해 이 자금이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은 아니라는 점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개인 청구권을 소멸됐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의 “예산 10억엔“이라는 표현 외에 이 자금의 법적인, 구체적인 성격을 대외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
따라서 역사적 무게를 감당하기 힘든 합의를 덜컥 한 뒤 피해 당사자와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는 사정이 겹친 결과가 경축사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또 경축사에서 “작금의 국제정세, 특히 동북아지역의 안보지형의 변화는 우리에게 엄중한 대응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며 “한일관계도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3년 경축사에서는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일본이 이웃국가로서 열린 마음으로 동북아 평화를 나눌 수 있는 대열에 나오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촉구했다.
2014년에는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이 오히려 양 국민의 마음을 갈라놓고 상처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과거를 직시하려는 용기와 상대방의 아픔을 배려하는 자세가 없으면 미래로 가는 신뢰를 쌓기가 어렵다”고 비판했다. 경축사 중 한일 관계에 할애한 분량도 적지 않았다.
반면 올해 경축사에서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은 삼간 채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만 간단히 언급했다.
박근혜정부의 이같은 자세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따라 한미일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미국의 판단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과 일본의 갈등과 대립은 중국과 맞서고 있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세 나라(한국 미국, 일본)는 미래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의 발언 등이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한일관계에 대해 전례없이 간략한 언급은 미중 대립의 격화 속에 한일 협력이 필요하다는 미국의 주문을 박근혜정부가 적극 수용한 결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