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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런 목사님, 다신 없습니다"

    권력 앞에서 강하고 약자와 더불어 살았던 고 박형규 목사를 그리워하며..

    고 박형규 목사

     


    ■ 방송 : CBS TV (CBS주말교계뉴스, 8월 26일(금) 밤 9시50분)
    ■ 진행 : 조혜진 앵커
    ■ 대담 : 김상근 목사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 조혜진 > 민주화운동의 거목이자 행동하는 신앙인이었던 박형규 목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박 목사의 장례예배에는 그를 그리워하는 목회자들이 참석해 고인의 유지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는데요.

    장례예배에서 설교를 전한 김상근 목사와 함께 잠시 고인의 삶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김 목사님, 아직도 마음이 많이 아프시죠?

    ◆ 김상근 > 그렇죠. 네, 여전히. 오래 아프셨으니까 언제 돌아가시리라 생각했지만 정작 가시니까 이렇게 마음이 아립니다.

    ◇ 조혜진 > 큰 스승을 떠나보낸..

    ◆ 김상근 > 네.

    ◇ 조혜진 > 그런데 장례예배에서 박형규 목사님을 56년 동안 알고 지내셨다고 말씀 하셨어요. 김 목사님께서 기억하는 박형규 목사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 김상근 > 언제나 조그마한 가방을 들고 다녔어요. 이만한 가방을. 이 속에 꼭 성경이 들었습니다. 꼭 성경을 넣고 다니셨어요. 박 목사님의 일생을 놓고 보면 ‘아, 저 양반이 정말 목사인가.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데, 그 분 손에는 언제나 성경이 들려 있었다. 성품으로 말하면 아주 유하시고요. 부드러우시고요. 다정하시고 늘 그러시죠. 그 속에는 어려운 시기에 한국의 현대사를 써 올 정도의 그런 강인함이 있었던 거죠.

    ◇ 조혜진 > 그리고 또 권력자 앞에서는 강하시고, 약자들 앞에서는 유하시고.

    ◆ 김상근 > 네. 유할뿐더러 약자들한테는 그냥 하나야. 한 몸이에요. 그냥 한 몸이지 떨어져 있지 않아요. 저는 늘 박 목사님 생각하면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로서 땅에 오셨다. 오셔서 우리와 더불어 같이 사시고 아픔을 같이 하셨다. 박 목사님은 그런 아픔의 자리, 어려움의 자리, 고통 받는 사람 그냥 같이 해요. 주저 하지 않고요.

    ◇ 조혜진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권력자 앞에서는 굉장히 당당하시고 강인하신 분이셨는데, 옥고를 6번이나 치르셨잖아요. 민주화 운동 때문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정리해 주시겠어요?

    ◆ 김상근 > 사실은 박 목사님 스스로가 무슨 일을 저질러서 옥고를 치르신 일은 별로 없어요. 73년이죠. 73년에 남산에서 그 때는 부활절 예배를 드렸었는데, 부활절 예배를 드릴 때 ‘삐라’ 소위 전단지를 뿌리고 현수막을 써가지고 가서 펼치려고 했어요. 내용은 ‘주여 저 대통령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런 내용. 그런데 현수막은 펼치지도 못했고, 전단지는 몇 장 뿌리다 말았어요. 박 목사님하고.

    ◇ 조혜진 > 빨리 발각이 됐군요?

    ◆ 김상근 > 아니요. 거기 가니까 하기 좀 어려워요. 거기 예배 끝나고 하기 좀 어려워요. 그래서 하지를 못했어요. 그것을 저희는 ‘남산 부활절 사건’ 이라고 불렀고, 그 쪽에서는 ‘국가 내란 예비 음모’라고 해서 잡아냈거든요.

    또 한가지는 민청학련사건, 그게 74년이죠. 박목사님이 그 때에도 국가를 뒤집어엎을 계획을 했던 것은 전혀 아니에요. 그런데 그만 민청학련사건, 큰 민주화 운동인데. 그 민주화 운동에다가 이름을 ‘민주청년학생사건’이라고 붙여서 또 감옥에 가셨고요.

    그래서 대게 학생들의 움직임이 있다든지 또 학생들이 움직이다가 그들이 구속이 된다든지 그러면 그들이 대게 박목사님을 끌고 들어가요. 박 목사님이 계시면 좀 낫잖아요. 자기들만 있는 것 보단 나으니까 끌고 들어가는 걸 알면서도 당신이 그냥 받아요. 받고 내가 했다고, 내가 하라고 했다고 당신이 딱 가로막고 서시거든요. 그래서 이제 6번이나 갔다 오셨고 했죠.

    ◇ 조혜진 > 정말 우리 사회 민주화를 위해서 정말 몸을 다 내던지신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그런데 어느 정도 우리사회가 민주화가 된 이후에는 어떤 활동에 집중을 하셨을까요?

    ◆ 김상근 > 주로 기념 사업하는 일인데 시간을 많이 쓰셨고. 그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는 일에 자료를 정리하고 축적하고 하는 일을 하셨고, 그리고는 통일 운동에 전념을 하셨습니다. 통일 운동은 2가지 방향이었었는데, 하나는 북과 직접 남북문제에 관한 포럼을 하는 그런 일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어떤 거리에 나서서 통일 운동을 외치고 뭘 하고 그런 것 보다는 어떻게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지 북의 학자들하고 초청해서 같이 토론하고 하는 일과 북쪽을 돕는 일, 남북 나눔 운동 같은 일에 전력하셨죠.

    ◇ 조혜진 > 네. 지금 박형규 목사님께서 지금의 한국 교회와 사회를 바라보실 때 좀 안타까운 마음이셨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어떠셨어요?

    ◆ 김상근 > 교회 걱정의 핵심이 뭐냐면 교회가 왜 아픈 자, 고통당하는 자 옆으로 가지 않느냐 하는 걱정이 있었고요. 또 교회가 너무 자본주의에 매몰되어 가는 것. 그러면 몸이 무거워서 못 움직인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하는 말씀 주셨고요.

    ◇ 조혜진 > 정말 적절한 비유인 것 같아요.

    ◆ 김상근 > 그리고 이제 지난 시기를 회상하시면서 지금 몸을 던지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셨고요. 이제 최근에 와서는 나라가 어렵게 되니까 이 어려운 나라 걱정 많이 하셨죠.

    ◇ 조혜진 > 한국교회가 그분의 유지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 김상근 > 목사님 말씀을 빌어서 하면 몸이 가벼워야 합니다.

    ◇ 조혜진 > 가난해 져야 하겠네요.

    ◆ 김상근 > 그렇기도 하죠. 그 분의 유지를 받드는 건 그 분의 몸가짐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 조혜진 > 박형규 목사님의 유지를 이어가는 것, 한국 교회 전체의 과제로 남은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김 목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김상근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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