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핵추진 잠수함 보유 주장이 정치권에서 확산되고 있다.
여당 내에서 우리 군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공식 제기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도 북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성공에 따른 실질적인 대비책 마련을 지시하면서 핵잠수함 보유론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SLBM은 발사 원점을 탐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안보에 결정적 위협"이라며 "군 당국은 핵잠수함 도입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대표적 핵보유 주창자인 원유철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는 이날 언론인터뷰에서 "북한이 SLBM 발사에 사실상 성공했다"며 "항시적으로 북한의 도발을 감시하고 제어할 수 있는 핵잠수함을 배치해 북한의 SLBM 도발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국군 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도 북한 SLBM에 큰 우려를 나타내며 군에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북한은 핵무기 소형화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탄도미사일에 핵을 탑재하게 된다면 우리 국가와 민족의 생존이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정부와 군은 진화하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에 대응해서 실질적인 대비책을 마련하고, 북한이 어떤 형태로 도발을 하든 그 시도 자체가 북한 정권의 자멸로 이어질 수 있도록 확고한 응징태세를 유지해 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으로 핵잠수함 보유론에 더 힘이 실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여권 일부 인사들과 군사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핵추진 잠수함 보유 주장이 계속돼 왔지만 당사자인 우리 군은 극도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핵잠수함 보유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핵잠수함 건조는 '핵무장을 하지 않는다'는 우리 정부의 비핵화 원칙과도 연결돼 있어 군이 먼저 나서서 보유 여부를 거론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논리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부지 선정과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등과 관련 현안보고를 위해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 軍 "계획없다" → "검토" 입장 변화…전문가 "핵잠 도입은 가야할 방향"그러나 여당 원내대표의 핵잠수함 보유 발언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북한의 SLBM 위협 등에 대한 실질적인 대비책 마련을 지시한 이후 군의 입장에도 미세한 변화가 감지된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이날 오후 국회 국방위 현안보고 자리에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 발사 성공 이후 나오고 있는 핵잠수함 보유 문제에 대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한 장관은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의 핵잠수함 보유 주장에 대한 답변에서 "원자력잠수함의 전력화를 결정한 바는 전혀 없다"면서도 "필요성에 대해서는 중요성을 주장하는 분들이 많으므로 이를 유념해서 국방부가 앞으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그동안 핵잠수함 도입 주장이 나올때마다 "전혀 계획이 없고 진행 중인 사안도 없다"고 밝혀왔던 점을 감안하면 다소 변화된 입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다속에서 은밀하게 이동하는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SLBM은 단 1발로 전쟁의 양상을 뒤집을 수 있어 '게임 체인저' 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우리 군의 전력 보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군 당국은 해상초계기 등 공중 탐지자산을 활용해 북한의 잠수함을 추적하고 기존 그린파인 레이더와 내년말 배치 예정인 사드 레이더로 SLBM을 탐지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같은 전력으로 전후방에서 기습적으로 공격해오는 북한의 잠수함을 추적·탐지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잠수함 잡는 잠수함'인 핵추진 잠수함을 확보해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북한의 SLBM 발사 모습 (사진=노동신문)
북한 잠수함이 은밀하게 기지를 빠져나와 SLBM을 기습발사하면 이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제한 수중작전이 가능한 핵추진 잠수함으로 북한 잠수함을 24시간 감시하는 것이 최선의 대비책이라는 얘기다.
우리 정부는 앞서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기인 지난 2003년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사업인 '362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참여정부는 4천 톤급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하다 포기했다. 농축우라늄 확보 문제 등의 기술적 한계와 함께 미국 등 주변국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정성장 세종문제연구소 통일전략실장은 "북한 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미중간, 중일간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또다시 강대국 패권경쟁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며 "북한의 SLBM에 대해 마땅한 대응수단이 없는 만큼 핵추진 잠수함 도입은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핵에 대해 핵으로 대응하는 것은 '저비용 고효율'의 국방전략일 뿐 아니라 북한 핵문제를 남북간의 문제로 전환할 수 있는, 한반도 문제를 다시 '한반도화'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 SLBM에 대한) 대응 전력으로 거론되는 핵추진 잠수함 도입은 나라 안팎의 상황을 고려했을때 당장 추진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이와 관련한 여론을 적극적으로 듣고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