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이정현 의원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지난달 9일 서울 올림픽경기장. 전당대회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유세장에서 후보로 연단에 오른 이정현 의원은 "일하고 싶다"고 절규했다. 그는 그날 새누리당 사상 첫 호남출신 당대표가 됐다.
일하고 싶다던 바람대로 그는 취임 한 달 가까이 학교와 시장 등 민생현장을 쉼없이 누비며 광폭행보를 펼쳤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예고 없이 방문하고, 인근 경희대학교 도서관을 찾아 학생들과 즉석 간담회도 벌였다. 시장 상인과 중소기업인은 물론 인사동과 대학로 등 문화 현장도 방문했다.
"국민 신뢰 회복의 답은 민생"이라는 평소 소신대로 현장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이 대표의 행보에는 계파 구분 없이 우호적인 평가가 많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은 "민생 활동도 잘 하시고 당직 인선도 계파 구분 없이 잘 마무리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친박계 의원은 "이 대표가 나홀로 유세하는 걸 보면서 진정성이 느껴졌는데 그의 민생 행보에도 똑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 野 "당대표 치고는 너무 가벼워"반면 이 대표에 대한 야당의 평가는 싸늘하다. 취임 한 달을 앞둔 지난 5일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을 한 이 대표는 야당 의원들의 야유 속에 연단을 내려왔다.
댓글을 긁어모아 민심을 살폈다는 이 대표는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 등 정치 개혁을 화두로 던졌다. 또 새누리당이 호남을 홀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연대정치도 제안했다.
그는 또 "김대중,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 집권 시절 국정에 더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 국민이 뽑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던 것도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정부조직법 개정 발목잡기부터 대선불복 형태의 국정 반대. 국가 원수에 대한 막말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하자 야당 의원들은 "청와대부터 잘 하라"며 발끈했다.
야당이 노동법을 협조해주지 않는다는 대목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야"라며 비아냥댔고, 한 의원은 "공부 좀 하시오"라고 호통쳤다.
야당 의원들은 연설 직후 삼삼오오 모여 이 대표의 '뒷담화'를 하기도 했다. "당대표 치고는 너무 상스럽고 가볍다"는 시각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연설 직후 논평에서 "이정현 대표는 아직도 자신이 청와대 홍보수석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어리둥절하다"고 말했다.
기동민 원내대변인도 "집권여당 대표의 연설인지,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장의 연설인지 모르겠다"며 "때로는 할 말은 했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그립다"고 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사진=자료사진)
◇ 與 "청와대 홍보수석 아래 행정관같은 대표"
새누리당 내에서도 민감한 청와대 이슈에는 일절 나서지 않는 호위무사 같은 행보에 불만이 높다.
새누리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가 그간 보여 온 민생 행보는 높이 살 만하지만 청와대와의 관계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애둘러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사과했지만 이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까불지 말라는 얘기를 하려고 사과를 깔아놓은 것 같다"며 "당 대표가 아니라 청와대 홍보수석 아래 행정관처럼 행동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표 연설에서 들고 나온 이른바 '호남 화해론'에 대한 당내 시각도 곱지 않다.
새누리 중진 의원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본인은 의원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사과를 해 당황스러웠다"며 "호남 차별을 인정하는 데 대한 당내 반발도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