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Bethany Hamilton 인스타그램
'외팔 서퍼' 베서니 해밀턴(26)은 지난 7월 14일 열린 '스포츠계의 그래미상' ESPY 어워드에서 최우수 여자 장애인 선수 부문 후보에 올랐다.
지난 5월 열린 세계서핑리그(WSL) 피지 여자 프로대회에서 전 세계챔피언 스테파니 길모어와 현 세계랭킹 1위 타일러 라이트를 꺾고 3위에 오르는 인간 승리를 이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ESPY 어워드 최우수 여자 장애인 선수 부문 후보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한 후, 해밀턴은 주최측에 후보 지명 철회를 요청했다. "저는 서핑 대회에서 비장애인 선수들과 경쟁해요. 그런데 장애인 선수 부문 후보가 된 거예요."
주변에서는 해밀턴의 장애에만 초점을 맞추고, 서핑할 때 한 쪽 팔이 없으면 불편한 게 사실이지만, 정작 그는 한 팔로 서핑하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한 팔로 정말 서핑을 잘해' 대신 '이렇게 파도가 치는데 정말 잘했어'라고 생각해요."
해밀턴은 자신의 도전이 특별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장애인 선수에게 굴욕감을 줄 수 있는 장애인 선수 부문 대신 인생의 특별한 상황에 잘 적응했다는 의미에서 가장 적응력이 좋은 선수 부문으로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고 그는 제안했다.
◇ 13살 때 상어공격으로 왼팔 잃었지만 1년 만에 복귀
사진=Bethany Hamilton 인스타그램
해밀턴은 '서핑 DNA'를 타고났다. 하와이 카우와이섬에서 나고 자란 그는 8살 때 처음 서핑 대회에 출전했다. 9살 때 후원사(립 컬)가 생겼다. 13살에 출전한 NSSA 국내챔피언십에서는 2등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도유망했던 해밀턴의 서핑 인생은 2003년 10월 31일 멈췄다. "친구와 서핑을 하고 있었는데, 회색 물체가 번쩍 하더니 갑자기 몸에서 통증이 느껴졌어요. 아래를 내려다 봤더니 바닷물이 붉었고, 왼팔과 보드 일부가 없었어요. 4m 짜리 뱀상어한테 공격당한 거죠."
아버지가 보드용 줄로 임시로 지혈을 하고 해밀턴을 근처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어부가 잡은 상어는 보드의 잔해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한쪽 팔을 잃었지만 서핑에 대한 해밀턴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상어에게 공격당하고 꼭 1년이 지난 2004년 NSSA 국내챔피언십으로 복귀했다. 그해 ESPY 어워드에서 최고 복귀 선수 부문에서 수상했다. 주목받는 게 불편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을 돕겠다는 새 목표를 가슴에 새겼다.
◇ 출산 후에도 선수생활…다큐 '서프 라이크 어 걸' 제작
사진=Bethany Hamilton 인스타그램
해밀턴은 선수생활을 계속 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2011년 개봉한 영화 '소울 서퍼'(Soul Surfer) 홍보에 집중하면서 서핑에 대한 그의 열정이 사그라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4년 아듬 덜크와의 결혼은 그의 서핑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남편은 제가 서퍼로서 능력을 마음껏 펼치도록 독려했어요. 서핑에 대한 열정이 다시 타올랐죠." 결혼하고 몇 달 후 출전한 파이프라인 여자 프로대회에서 그는 1위에 올랐다.
2015년 6월 아들 토비아스를 낳았다. 육아와 훈련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다. 출산 후 3개월 만에 나간 WSL 스와치 여자 프로대회에서 13등에 그쳤다. "출발이 좋지 않았지만 '출산한지 4달밖에 안 됐으니까 너무 압박감을 느끼지 말자'고 되뇌였어요."
여자 서퍼는 가정을 이루면 선수생활을 그만둔다. 월드챔피언십 투어에서 활동하는 여자 서퍼 중 그는 유일한 기혼이자 엄마다. 해밀턴은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의 지지 덕분에 선수생활을 이어왔다"고 고마워했다.
해밀턴의 일대기는 다큐멘터리(제목: Surfs Like a Girl)로 제작되고 있다. 다큐는 그가 서퍼로서 남긴 업적에 초점을 맞춘다. "상어 공격에서 생존했다는 사실에 가려진 제 서핑 실력을 알리고 싶어요. '한 팔로 서핑을 하네' 대신 '해밀턴처럼 되고 싶다'는 반응을 끌어내길 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