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가 기상 이변에 따른 가뭄과 홍수 등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특히, 과일과 야채 등 농작물에 병해충 발생이 급증하면서 독성 강한 농약사용이 늘어나, 먹거리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오는 12월부터 수입 과일과 견과류 등에 대한 PLS(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농약성분은 검출 기준치가 정해져 있지만, 이런 기준치가 없는 농약성분에 대해선 무조건 0.01ppm을 적용해 국내 수입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열대과일과 견과류를 수출하는 미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과도한 비관세장벽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무역통상마찰이 우려되고 있다.
◇ 기상이변, 농작물 병해충 창궐....새로운 성분의 농약사용 급증
올해 우리나라는 36℃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사과와 배 등 과일의 화상병 피해가 크게 늘어났다. 화상병은 세균에 의해 과일나무의 열매와 잎, 줄기 등이 마치 불에 탄 것처럼 검게 변하는 전염병이다.
또, 이탈리아는 지난해 여름 잦은 호우로 인해 대표 농산물인 올리브의 수확량이 급감하면서, 전 세계 올리브유 가격이 오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필리핀에선 오랜 가뭄으로 바나나 나무가 말라버리는 ‘신 파나마병’이 창궐하면서 바나나 생산량이 급감했다. 이로 인해 올해 국내에 수입된 바나나 가격이 1㎏당 1천450원으로 지난해 보다 44%나 폭등했다.
이 모두가 기상 이변에 따른 병해충 피해로, 기존의 농약으로는 방제효과가 떨어져 농약의 성분도 다양해지고 독성 또한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이는, 수입산 열대과일과 견과류, 유지류(참께, 해바라기씨 등)에 독성 강한 새로운 농약성분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 부적합 판정 받은 수입 농.임산물....4년 사이 2배 증가
실제로 국내에 수입된 농산물과 임산물의 부적합 적발 건수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농.임산물의 부적합 건수는 지난 2010년 70건에서 지난 2014년에는 83건으로 늘어났다.
수입 중량을 기준으로 하면, 부적합 농.임산물이 2010년 1,074톤에서 2014년은 2,125톤으로 2배에 달했다.
2014년 적발된 농.임산물을 품목별로 보면, 바나나가 21건에 1,122톤으로 가장 많았고, 고추의 경우도 4건에 358톤이 적발됐다. 고사리도 4건에 27톤이 부적합 판정을 받아 폐기처분됐다.
이들 농.임산물은 농약성분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거나 납과 카드뮴 등 중금속에 오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 12월부터 열대과일, 견과류 잔류농약 검사 강화
우리 정부는 이처럼 수입 농.임산물에서 잔류농약과 중금속 등이 과다 검출됨에 따라 검역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우선 당장 오는 12월부터 열대과일과 견과류, 유지류에 대한 검역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외국에서 사용하는 농약 성분 가운데 454종에 대해서만 기준치를 만들어 관리했다. 이밖에 기준치가 아예 없는 농약 성분에 대해선 비슷한 성분의 기준치를 적용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준치가 없는 새로운 농약 성분에 대해선 무조건 0.01ppm을 적용해, 이 이상 검출될 경우 부적합 판정을 내리겠다는 방침이다. 이른바 PL(positive list) 시스템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수입 열대과일과 견과류 뿐만 아니라, 국내산 과일과 견과류에도 똑 같이 적용된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농약의 성분 가운데 기준치가 없는 성분이 검출될 경우 0.01ppm이 적용돼 유통이 금지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PLS가 매우 강력한 규제라서 열대과일 수입업계와 국내 농업계 입장에서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하지만 국민 건강을 위해선 꼭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 국내 농작물 검역 강화 방침....미국, 동남아 등 수출국가 반발
하지만, 우리 정부의 PLS 시행 방침에 대해 미국과 필리핀 등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아몬드와 호두 등 견과류의 70%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따라서 PLS가 시행돼 검역 기준이 강화될 경우 자국의 견과류 생산 농가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상현 연구원은 “이미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의 PLS 시행과 관련해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연구원은 특히, “현재 미국의 대선 후보들이 모두 보호주의 무역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에, PLS를 또 다른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오해하고 보복 조치에 나설 경우 통상 마찰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식약처 관계자는 “PLS는 일본이 제일 먼저 시행하고 미국과 호주, 대만도 적용하고 있는 제도”라며 “우리나라 국민이 먹는 섭취량하고 체격 조건 등을 고려해서 잔류기준을 만들기 때문에 이것을 무역장벽이라고 주장하면 곤란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