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쌀농사가 대풍작을 이룰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정부는 풍년농사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지금도 쌀이 남아돌아 직불금과 정부수매자금, 창고 보관비용으로 연간 2조원을 투입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쌀이 과잉 생산될 경우 재정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정부와 새누리당이 알짜배기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안정적인 쌀 생산을 위해 지난 1992년 도입했던 농업진흥지역이 쌀 과잉생산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와 동시에 국가식량안보 전략 자체가 24년 만에 전면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 당.정.청 21일 쌀 대책 논의, '농업진흥지역' 해제 발표
정부와 청와대, 새누리당은 21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고위급 협의회를 열어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김광림 정책위의장이 밝혔다.
김 정책위의장은 농업진흥지역 해제와 관련해 "시장격리 대책과 소비 증대 대책도 마련해야겠지만 현재 농지를 갖고 계속 쌀을 생산하는 것은 농민들한테도 유리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말은 쌀 과잉생산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우량 농지인 농업진흥지역을 전면 또는 일부 해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농업진흥지역이 해제되면 곧바로 공장과 물류창고, 교육시설, 의료시설, 근린생활시설 등이 들어설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아직 구체적인 해제 면적과 지역, 시기는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그동안 쌀 생산과 관련해서 농업진흥지역의 해제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가지고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 농업진흥지역, 1992년 식량안보 차원에서 지정
정부는 지난 1992년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을 만들어 농업진흥지역을 지정했다. 그 이전까지는 절대농지라 해서 개별 필지별로 지정해 관리했지만, 농업진흥지역으로 변경한 이후부터는 권역별로 관리가 이뤄져 왔다.
이는 농업진흥지역에 대한 개발행위가 그만큼 많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는 쌀 생산량이 부족했던 시기로 우량농지를 보존해 식량안보를 지키자는 취지에서 규제를 강화했다.
올해 6월말 기준 전국의 농업진흥지역은 모두 179만ha로 이 가운데 논과 밭, 과수원 등 농지가 81만ha로 45%, 나머지는 도로와 수로, 예전부터 내려오던 잡종지, 공장용지 등이 55%를 차지하고 있다.
농지 가운데는 논이 71ha로 88%를 점유하고 있다. 이번에 당.정.청이 해제하겠다고 밝힌 농업진흥지역은 바로 논을 의미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 대풍이 들었을 때 논 1ha에서 평균 5.4톤이 생산됐다”며 “농업진흥지역에 있는 논 1만ha를 감축할 경우 쌀 생산량이 5만4천톤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쌀 생산량이 국민 소비량 보다 40만 톤 이상이 과잉생산된 것을 감안하면, 농업진흥지역 7만ha를 해제해도 쌀 수급에 큰 차질은 없다”고 밝혔다.
◇ 농업진흥지역 '야금야금' 해제..."남아 있는 농지 없을 것"
하지만, 농식품부의 농지 담당 부서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농지를 개발할 경우 식량확보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농업진흥지역내 농지 81만ha 가운데 80%는 정부가 그동안 수 십 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수리시설을 설치하는 등 경지정리를 끝낸 우량농지다. 나머지 20%도 집적화 돼 보존 가치가 높은 농지다.
이와 관련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해도 8만5천ha의 농업진흥지역이 해제됐다”며 “이런 식으로 진흥지역을 해제하다 보면 남아 있는 농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식량 확보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진흥지역을 해제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경지정리 된 우량농지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당.정.청 회의에서 김광림 정책위의장이 “진흥지역을 해제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진흥지역을 해제해 준다면 땅을 갖고 있는 농민들이 100% 해제해 달라고 할 것”이라며 “개발행위로 땅값이 오를 게 분명한데 원하지 않는 농민이 있겠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