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들이 정부의 단종·낙태 정책으로 인해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법원이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1심 때보다 적은 위자료를 산정했다.
한센인 피해자 측은 한센인들의 고통을 외면한 '아쉬운 판결'이라며 대법원에 상고할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민사30부(강영수 부장판사)는 23일 엄모씨 등 한센인 피해자 139명이 5000만원씩을 배상하라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국가는 원고들에게 각각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1950년대 소록도 갱생원(병원)의 연보를 보면, 낙태·단종 수술에 대한 법령이 없어 고충이 많다는 내용이 나오는 등 근거 법령 자체가 흠결됐다"며 "특히 치료제가 발견된 이후에도 자녀 출산을 막기 위해 수술을 시켜야 했는지 합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한센병은 유전병이 아니고 전염병이라는 것이 밝혀진 만큼 한센병 환자가 아이를 낳더라도 그 아이는 정상인으로 출생하게 된다"며 "출산 후 환자 부모와 격리시켜 양육할 수도 있었던 만큼 자녀의 감염을 막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실시했던 낙태·단종 수술은 법률적인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수단의 적절성 등을 갖추지 못했고, 인격권과 평등권, 자기결정권, 신체를 훼손 당하지 않을 권리, 행복 주권을 침해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센인 환자들이 치료와 생존을 위해 국가에 기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가에 의해 행해진 수술은 비난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낙태한 여성의 경우 태아를 잃은 상실감과 태아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한센인들이 자발적으로 요양소를 퇴소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자발적인 동의에 의한 수술이었다'는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소멸 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당시 격리수용돼 치료를 받고 있던 원고들 입장에선 위법 행위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어려웠고,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피해 사실이 밝혀진 시점에서야 불법 행위를 알게 됐다"며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가 위자료 액수를 1심 때보다 낮은 2000만원으로 산정한 것을 놓고는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선 5건의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낙태 피해 여성에게 4000만원, 정관수술 피해자에 30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항소심에서는 오히려 위자료 액수가 깎였기 때문이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가 지난 6월 사법 사상 처음으로 전남 고흥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특별재판을 열어 장기간 심리에 공을 들였던 만큼 한센인들은 재판 결과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길용 한센인총연합회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지난 40~50년 동안 당한 피해를 말할 수 없고, 하루에 몇 분씩 돌아가시는데 3년을 끌며 한 재판에서 2000만원을 주겠다는 것은 얄팍한 수"라고 비판했다.
한센인 피해자들을 대리한 변호인 측은 "1년 2개월 동안 장시간 심리를 했으면서도 1심보다 적은 위자료를 인정한 것은 위자료를 증액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에도 반하는 아쉬운 판결"이라며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센인들에 대한 강제 낙태·단종은 지난 1935년 전남 여수에서 처음 시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센병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지난 2007년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생활지원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이후 한센인 500여명은 국가가 수술을 강제했다며 지난 2011년부터 1인당 5000만원씩을 배상하라는 내용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5건을 제기했다. 현재 대법원에 1건의 상고심이 계류 중이다.